무심 연습 / 김시헌

무심無心은 의식의 탈락이다. 의식을 빼면 남는 것은 육체뿐이다. 육체는 껍데기이다. 그래서 땅 위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같고, 길가에 서 있는 나무와도 같다.

사람들은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생각 없이 그대로 동작만으로 살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자는 말을 곧잘 한다. 마음 비우기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이 있다. 스님, 신부, 목사 같은 수도인이다. 그들은 신념과 자신과 초월을 손아귀 속에 넣고 사는 사람이다.

 

잡념이 마음 안에 들끓고 있으면 고통이 온다. 돈을 많이 가지고 싶은 생각, 남을 앞질러서 이기고 싶은 생각 등 많다. 그것을 쉽게 얻는 사람도 있지만 얻지 못할 때 좌절과 비탄과 열등감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설사 얻었다 해도 다음 단계를 또 소원한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말한다. '지족知足'이라는 한자말을 벽에 걸어놓고 사는 사람을 보았다. 글자 그대로 '족함을 알자'인데. 어느 정도에서 욕심을 끊어야 한다는 뜻이리라.

 

어느 날 '로댕조각전시회' 구경을 갔다. 입장료를 주고 전시장 안으로 몇 걸음 들어선 곳에 <지옥의 문>이라는 커다란 작품이 나왔다. 기와집 대문짝보다도 더 컸다. 사람 키 두 갑절은 되었으리라. 그 넓이 속에 온갖 고통의 양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거꾸로 매달려서 표정을 한껏 찡그린 사람, 위를 쳐다보면서 무엇을 열심히 갈구하는 사람, 사랑의 사슬에 걸려서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람 둥, 인간 세상의 고통은 거기 다 있었다. 그리고 작품의 상층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작은 조각이 따로 붙어 있었다. 아래쪽의 그 고통의 상황을 내려다보면서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표정이 바로 로댕 자신이다."하는 직감이 내게 왔다. 로댕도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조각에 전력투구했을 것이다. 동양 사람이 즐겨하는 무심 공부는 해 보지도 않았을까. 대상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으면 잡생각에서 떠날 수 있다. 그 많은 조각품을 만들면서 로댕은 생각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가 무성하게 선 가로수의 잎가지를 바라볼 때가 있다. 하늘을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는 나무에는 생각이 없다. 그냥 그대로 무심의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래살래 고개를 젓고 있는 동작을 보고 어느 시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고 표현하였다. 나뭇잎끼리의 은밀한 대화가 귀에 들릴 정도라면 지극한 고요 속에 있어야 한다. '절대 고요'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 그 시인은 지극한 절대 고요의 경지에 있을 것이다.

 

무심은 가슴 안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느덧 유심有心으로 돌아간다. 본래의 마음은 무심인가. 유심인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무심은 잠시의 휴식을 줄 뿐 곧 유심에게 자리를 빼앗긴다. 그 무심을 자기 안에 오래도록 머물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의 물결을 정지시키고 고요 속에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이승에서 극락을 얻은 사람이다.

 

무심은 만병통치약이다. 학자도 무심을 말하고 정치가도 무심을 말한다.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아름답게 창조하는 사람이다. 새것이 나오자면 낡은 것은 버려야 한다. 그 버려지는 곳이 곧 무심이다. 무심으로 돌아가서 무에서 유를 찾아내는 사람으로는 예술가도 있지만 철학가도 있다.

 

낡은 것을 어떻게 버리느냐? 어떤 사람은 낡은 것을 보물로 끌어안고 놓기를 싫어한다. 그것 아니면 반껍데기가 될까 봐 불안해하낟. 그리하여 전통을 말하고, 혈통을 말하고, 고집과 완고를 자기의 방패로 삼는다. 방패막에 싸여 사는 사람은 그 나름의 평안이 있기는 하다. 방패막이 자기를 지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무심으로 돌아가볼 일이다. 무심은 영零에로의 환원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하면, 자신을 묶고 있는 그 방패막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깨달아야 제거될 수가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버리면서 얻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도 때로 무심 연습을 한다. 때로 뿐 아니고 몇 십 년을 그 노력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단 몇 십 분도 완전 무심을 얻기가 어렵다. 어느덧 잡념이 가시처럼 날아와서 고요한 수면에 물결을 일으킨다. 무심은 창조주의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하라고 만들어 놓은 인간의 능력인데 왜 버리느냐고 호통이라도 칠 것 같다. 그러나 포기할 수가 없다. 그 안에 휴식이 있고, 평안이 있고, 영원에의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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