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가와 몽상가 / 최연실

  “띠띠띠띠 띠리릭.”

그녀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자 “철커덕” 문이 열린 다. 곧바로 소파에 앉은 그녀는 사방을 둘러본다. “이번 주엔 누구하고 일주일을 지낼까?” 듣는 이도 없는데 혼 자 중얼거린다.

그녀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쯤, 컴퓨터의 마우스처 럼 생긴 리모컨을 살짝 입술에 갖다 대곤 명령한다. 순 간 작은 기계에 초록 불이 켜진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 신이 선택한 로봇과 한 주를 지낸다. 지금 그녀가 “한석 규”라고 말하자 거실 왼쪽 모퉁이에 있던 로봇의 팔다리 가 앞·뒤, 좌·우로 움직인다. 둥근 머리도 두어 번 회 64 나리꽃은 잘 있나요 전한다. 분리됐던 로봇의 부속들이 “철커덕” 소리를 내 며 제 자리를 찾는다. 이어 큐브처럼 복제된 한석규 AI 가 저벅저벅 그녀 앞으로 온다. 지난주만 해도 그녀는 니 컬러스 케이지와 함께 일주일을 보냈다.

 

그녀는 인공지능 시대에 산다. 짧은 단발머리에 150m 의 단신에 플랫슈즈를 즐겨 신고, 화장기 없는 민낯으로 못 가는 데가 없다. 많은 직업이 없어진 지 오래지만, 그 녀는 살아남았다. AI가 수집한 글을 부드럽게, 서정적으 로 교정하는 건 로봇이 서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주변 사람들에게 직업을 이야기할 땐, 종종 자라목이 된 다. 아직도 그녀는 모든 게 서툴다.

 

두 달 전, 홀로서기를 선언한 그녀는 AI 로봇 전시장 을 찾았다. 혼자가 되길 원했는데 아이러니한 선택이었 다. 인간들은 별별 기준으로 이상형을 말하는데, 그녀가 우선순위로 꼽는 건 목소리와 눈빛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에게 받은 합의금으로 한석규 목소리에 니컬러스 케이지의 눈을 다 갖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기본 형 로봇에 한석규와 니컬러스 케이지를 각각 세팅한 후 에 그녀의 성격과 나이에 맞게 조정했다. 65 공상가와 몽상가 연이틀 하늘은 잿빛이었다. 수술받은 그녀의 무릎도 날씨 따라 시큰거렸다. 그녀는 종종 클래식 음악을 들으 며 일한다. 그 음악을 선호하게 된 건 그녀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 때문이다. 로봇 한석규가 그녀의 마음 을 읽은 모양이다. 조용히 일어나 ‘에릭 사티Erik Satie’의 <그노시엔느Gnossiennes>를 선곡한다. 그리곤 이내 살포 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밖에서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오늘은 연어 샐러드와 새우를 듬뿍 넣은 크림 스파게 티를 먹고 싶네요.”

그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상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건 여전하다. 한석규는 익숙한 듯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최 선생! 내 말 듣고 있는 거요?”

K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움찔했다. 프로그램 박 사 K는 나를 만날 때마다 십 년 후에 달라질 세상을 이 야기한다. 혼자 사는 게 대중화되면서 혼술, 혼밥, 혼행 (혼자 여행)이 부쩍 늘어난 건 사실이다. 이혼율도 줄었다 고 한다. 이제 곧 AI가 지배하는 알고리즘 세상이 온단다. 그러면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살 수 있게 될 거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말이다.

 

아파트를 살 때 가진 돈에 맞춰 평수를 고르듯이 유 명 배우의 얼굴을 모델로 한 로봇이 판매될 거란다. 예 를 들면, 모델 하나는 아파트 24평 값, 32평은 둘 정도 가 된다나. 로봇을 사려는 인간이 많아질수록 은행이나 보험사에서도 장기 적금 상품이 출시될 거라 한다. 미래 의 빈부 차는 로봇의 유형이 기준으로 작용할 거라며 K 는 장황하게 설명한다.

 

요즘엔 직장에서도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빨래 도, 설거지도, 밥도 시간을 설정하면 가능하다. 현재 시 공하는 아파트에는 인공지능 방식을 도입하는 곳도 더 러 있다고 한다. 물론, 옵션이므로 분양가가 비싸겠지만 말이다. 오래전에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했으나 분양가 때문에 할 수 없었노라 한다.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 이 유도 있겠다. 오늘도, 나는 공상가 K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에 나래를 편다.

 

점점 방대해지는 인간의 사고를 로봇이 습득하게 될 지도 모른다, 2016년에 이세돌과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의 바둑 경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알파고와 다섯 번 싸워 이세돌이 간신히 한 판을 이겼다. 이세돌은 생각 없이 던 진 바둑돌로 딱 한 번 승리했을 뿐이다. 인간은 인공지 능의 한계라 했지만, 알파고는 딥러닝 방식으로 스스로 패턴을 찾았다. 현재 진행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알고리 즘으로 터득한 결과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시대가 머 지않았을까. 만약 세상이 로봇에 의해 지배된다면? 알 파고가 인간의 방대한 경험을 습득해서 무수한 경우의 수를 읽어낸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자못 심각해진다.

 

며칠 전 ‘스파이크 존스spike jonze’ 감독의 <그녀The her> 라는 영화를 보았다. 부인과 별거 중인 남자 주인공, ‘테 오도르’는 공허한 삶을 살아간다. 방황 끝에 그는 ‘운영 체제operating system’를 판매하는 전시장을 찾는다. 그곳 에서 OS1를 구입한다. OS1의 이름은 ‘사만다’이다. 테 오도르와 사만다는 사랑하지만, 결국은 헤어진다. 사만 다라는 OS1는 다른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더 많은 사랑 의 감정을 느낀다. 테오도르만의 사만다가 아니라는 것 을 알았을 때, 인간과 인공지능의 괴리감에서 오는 벽을 이해하지 못한다.

테오도르는 이혼한 부인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남긴다. 영화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치유는 인간과 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난다는 걸 말이다. 2013년도 개 봉했지만, 배경은 2025년도다. 나는 현재 2023년에 속 해 있다.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을 공상하는 K, 그의 백일몽 같 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설마 하면서도 상상 속에 나를 맡 긴다. 몽상가가 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서툰 사람이 아니던가. 가까운 이들과 상호작용도 부족하기에 현재의 삶도 벅차다. 내가 사는 세상이 로봇 에 의해 지배되는 날이 올까.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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