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지영미

 

   아스팔트 도로에 어울리지 않는 키 낮은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낡은 간판을 이고 있는 멋없는 지붕들이 시간을 머금었다. 마을 가게 앞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빛바랜 고무통 안에 대충 꽂힌 크고 작은 식물들과 종일 자리에 앉을 주인을 기다리는 낡은 의자들이 그러하다. 백화점이나 쇼핑몰로 치자면 실외 쇼윈도 장식이 아닐는지. 손님을 배려하는 차원이라고 한다면 똑같은 가치다. 색이 바래고 칠이 벗겨진 가게들이 구석진 모퉁이길, 가파른 계단 아래에서 이정표가 되어준다.

 

   열린 문 사이로 익숙한 얼굴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가위를 들고 손님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미소 띤 청년이 액자 속에 우뚝하다. 그 옆에는 청테이프를 둘러쓴 거울이, 노르스름한 수건 위에는 세월이 칭칭 감긴 가위와 닳고 닳은 가죽 칼갈이가 자리를 잡았다. 때 낀 타일 위에는 샤워기를 대신하는 함석 물 조루가 아직도 제 몫을 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손님을 받은 의자는 높낮이 조절이 되다 말다 한다. 낡고 어수룩해진 도구가 거무스름한 저승꽃이 핀 이발사의 손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고 있다.

 

이발사 임무가 끝나면 보조 이발사 차례다. 이제껏 뒤에서 접대용 화투를 하시던 할머니가 손을 툭툭 털고 일어선다. 분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잘나가는 헤어살롱에 손님을 빼앗기면서 자연스레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 감겨주는 보조가 되었다. 굳이 궁색하다, 쓸쓸하다 하면 그리 말할 수 있겠다. 수십 년을 이어온 보이지 않는 정감을 무시해 버린다면 말이다. 마을 이발관은 주민들이 달과 해를 넘긴 소식을 나누고 잠시 쉬어가는 동네 사랑방이다. 유행을 파는 대신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공간이다.

 

   낡고 어스름한 가게들이 모인 거리는 얼핏 보면 마치 주인 잃은 철거촌 같다. 동네 카센터는 잡동사니 부품을 그냥 부려 놓은 고물상을 닮았다. 문 앞에 붙은 손전화번호가 운영 중임을 알려 준다. 사장님은 고물로 가득한 더미 속에서 용케도 필요한 부속품을 찾아와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를 해준다. 어려운 시절 사동을 시작으로 60여 년 같은 일을 해 오신 어른이다. 익숙함과 노련함이 어눌해진 손, 어두워진 귀와 눈을 대신하고 있었다. 못 고치는 거 빼곤 다 고친다는, 아는 사람만 인정해 주는 장인이다.

 

   길 중간에 자리 잡은 안경 시계점, 도로 끝자락에 자전거포도 얼핏 보면 문을 닫은 듯싶다. 침침한 조명과 늘 비어 있는 실내가 그런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가게 수명만큼 단골손님은 있다. 낡은 문에 달린 방울 소리에 주인장이 느릿한 걸음으로 나오면서 안부를 묻는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장 난 안경을 서둘러 고친다. 가물거리는 어르신들의 눈이 금세 환해진다.

 

    자전거 수리점은 무료 수리가 부지기수지만 문은 늘 열려있다. 천직이라는 사명감으로 가게를 붙잡고 이끌어 왔을 뿐이다. 거기에 젊은 날의 기억이 깃들어 있고 생을 이어갈 의미가 잠재한다. 켜켜이 쌓인 일상이 습관이 되었고 그 습관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동네 가게는 변함없이 찾는 손님이 있다. 말없이 오가는 정리 속에서 존재 이유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한때의 전성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동네 가게는 우리들의 인생을 은유한다. 풋풋한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신체는 기울지만 연륜이 쌓이듯, 세월이 묵은 가게를 그저 오래되었다고 낡았다고만 할 순 없다. 어느 한쪽이 기울고 어설퍼져 버렸다고 거기에 깃든 무수한 사연과 추억을 지울 수는 없다. 오래된 전통이 곧 우리의 미래가 된다. 경쟁의 원리 대신 상호 부조가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망 속에서 개인과 공동의 이익이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필요함을 안다. 시간이 멈춘 듯 한 가게는 내가 세상 속에 끼어 있음을 알려준다.

 

   서구화가 진행되면서 한때 오래된 것을 반듯한 네모난 것들로 바꾸어 버렸다. 낡았다고 촌스럽다고 과거와의 단절을 택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 생활 이면에 오래된 가게들은 우리에게 인간 내면의 본성을 일깨운다. 한겨울 늦은 시간, 불 밝힌 김 서린 뽀얀 창이 성급한 귀갓길에 숨 돌릴 틈을 준다. 굽어진 길모퉁이를 가파르게 올라가다 보면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누군가가 붙였는지 알 수 없는, 비뚤비뚤한 글씨가 적힌 푯말이 뭉클함을 자아낸다. 문득 학창 시절 어두운 골목까지 마중 나오셨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소박한 가게와 어스름한 마을 불빛은 경쟁 속에 매몰되어 가는 우리에게 긴 호흡의 시간을 가지게 해준다.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본다. 새것만이 미덕인 세상 속에서, 노포(老鋪)는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안식처이자 내일을 다짐하는 성소(聖所)가 되기도 한다. 낡고 오래된 전통은 한 인간의 성장이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만 있지 않음을 조용히 일깨운다. 작고 희미한 풍경이 우리에게 건네는 무한한 힘이다. 동양에서 '노(老)'라는 의미는 단순히 늙음이 아닌, 깊은 존경의 뜻을 품고 있다. 한 가지 일을 끈기 있게 지속한다는 것의 위대함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살아 있는 문화유산 그 자체이다. 몇 대째 이어온 가게들은 마치 뭉근히 끓인 영혼의 수프처럼 눅진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곳은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세월을 되돌아보게 하고, 과거의 흔적을 되새김질하며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하고, 미래의 삶을 버티어 낼 근원적인 힘을 준다.

 

   세월이 녹아든 유산에 우리가 이끌리는 이유로 이보다 충분한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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