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등산 / 목성균

새벽 산에 올라가서 자고 난 맑은 눈으로 날 새는 건너 산을 보면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이 보인다. 나무들은 곁에서 보면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먼 길을 와서 먼 길을 빙하처럼 아주 천천히 산을 통째로 밀고 간다. 그건 욕계가 깨어나기 전, 신 새벽에나 볼 수 있다. 밝아오는 산등성이의 나무를 보면 비로소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 길은 단숨에 달려가려는 자발적인 출발의 가까운 길이 아니다. 묵묵히 댓돌에 앉아서 한참 동안 마음을 모아 신들메를 메고

비로소 천천히 무겁게 일어나서 사립을 나서는 남자의 굽힘 없는 의지 같은 아주 먼 길이다. 서두르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평생 동안 가야할 먼 길. 날 새는 건너편 산등성일 건너다보면 나무의 가는 길이 보인다.

 

미명에 명암을 드러낸 산줄기에 늘어선 나무들의 행렬, 멀어서 나무의 행동거지와 모습이 작긴 하지만 그래도 나무들의 의중은 분명하고 크게 보인다. 앞선 나무와 뒤따르는 나무와도 똑 같은 간격. 그것은 이미 오랜 날을 함께 걸어왔고 앞으로도 함께 걸어갈 일행의 일관된 제자리의 지킴이다. 그 엄정한 질서가 움직여 가는 산등성이의 새벽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 나무들을 건너다보고 있으면 아득히 목어(木魚)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멀리서 아득히 살아오는 소리. 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둔탁하지고 않은 잘 마른 목질부의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용화사 아침 예불을 알리는 소리인지 아니면 환청인지 모르지만 꼭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 맨 앞에서 울리는 나무북 소리 같다. 그 시간에 먼 길을 떠나는 게 어디 나무뿐이랴. 신발 끈을 졸라매고 일터로 나가는 남자들도 나무만치나 많다. 아직 곤하게 잠든 자식들의 어여쁜 가능성을 위해서 저 산등성이의 묵묵한 나무들처럼 무모하게 사립을 나서서 어둠을 밀어내며 걸어가는 남자들의 길은 흡사 나무의 길과 같다.

새벽에 산에 오르는 사람도 많다. 산에 오른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다. 전생의 인과응보인 나무를 등에 진 물고기처럼, 수륙재를 지내서 제 과보를 풀어 줄 전생의 스승을 찾아 나선 중생들처럼 참을성 없이 발작을 하는 부류, 소릴 지르면서 나무를 등허리로 퉁퉁 치기도 하고, 숨 가쁘게 사지를 휘두르기도 한다. 다른 한 부류는 나무를 등에 지고 조용히 서서 동트는 건너편 산을 바라보는 참을 수 있는 한 참아 보자는 중생들이다. 나는 거기 속하는 중생이다.

 

새벽 산에 올라 건너편 산등성이의 먼 길 떠나는 나무들의 행렬을 잘 보면 나무들은 모두 사람이다. 사람들이 등허리에 나무를 지고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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