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에서 / 장석창
밴쿠버에서 해로를 통해 빅토리아 섬에 들어선 것은 어둠이 짙어가는 저녁 무렵이었다. 나는 페리 선상에서 이국에서 맞는 첫 저녁노을을 하염없이 즐기고 있었다. 빅토리아 섬에는 캐나다 서해안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주도州都인 빅토리아가 있다. 그날 밤 고풍스러운 주 의사당과 임프레스호텔의 야경을 보고 주변에 있는 전몰장병 추모비에 들렀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한국, 아프가니스탄 등 그들이 참전했던 전쟁과 연도가 명기되어 있다. 캐나다는 사람이 귀한 나라다. 직접적인 이해관계 없이도 자국민을 희생하며 국제사회에서 나름 역할을 하고 있다. ‘TO OUR GLORIOUS DEAD’, 그들을 기리는 헌정 문구다. 영광스러운 죽음이라. 추모비 앞에 설 때면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다. 국립서울현충원,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가면 어느 이름 없는 병사의 묘비 앞에 멈춰 서곤 했다. 하나뿐인 삶, 초록이 채 물들기도 전에 떨어져 버린 연두색 이파리, 영글다 시들어버린 잎새는 스스로 영광스럽다 느낄까. 대의大意라는 허울 좋은 미사여구에 싸인 그들의 죽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그가 내지른 마지막 비명은 과연 새 시대를 여는 전주곡이 되었을까.
다음 날 Mile '0' point(마일 제로)가 있는 언덕을 방문했다. 양측으로 쌓아 올린 돌탑 사이로 표식이 걸려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인 캐나다 대륙횡단 고속도로(Trans-Canada Highway No 1)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로 0마일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캐나다 동쪽 끝 뉴펀들랜드 섬의 세인트존스까지 총 길이가 7,821km이다. 국내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숫자의 생경함에 캐나다가 광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낯선 타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곳 주민부터 살피게 마련인데, 한적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즐기는 백인 노인들에게는 우리나라 노인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은퇴자의 도시라고 한다. 긴 여정을 마치고 이곳에서 새 출발을 하려는 노인들. 삶은 끊임없는 시작의 반복이다. 지금 내뿜는 날숨은 다음에 들이마시는 들숨의 전 단계이며, 곧이어 날숨으로 이어진다. 시작과 끝은 상반된 의미의 단어이지만 대립적 개념은 아니다. 마일 제로는 고속도로의 시발점인 동시에 역방향에서는 종착점이다. 새로운 시작은 앞선 시작의 끝에서 비롯되기에 상호 의존적이다. 끝을 현명하게 수용하는 것이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며 새로운 출발은 또 다른 끝맺음을 가치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때 그랬더라면…’ 가정법 과거완료로 명명되는 영문법이 새삼스럽다. 세월은 영원할 것 같더니만 어느새 또래의 때 이른 부고를 듣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 들어 멍하니 지난날을 되새김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방황하며 시험을 망쳤던 일, 진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너무 현실에 안주했던 일, 말기암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던 친구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일… 행복했던 추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이 앞선다. 반추하는 삶은 아쉬움과 미련 때문에 후회의 연속이지만, 그 후회마저도 잘 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겠다.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여가는 것이 삶을 유의미하게 마무리하는 지름길일 테니까.
주변 해안 절벽에는 특정 인명을 표기한 벤치(Bench)가 여럿 있다. 대양의 기운을 맞으며 휴식을 취했던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담은 벤치를 만들어 기증한다고 한다. 고즈넉이 앉아 창해를 바라보는 노인 모습을 떠올려본다. 앞바다의 물 한 줌이 해류에 편승하여 험한 북태평양을 돌고 돌아 회귀한 후 다시 흘러가듯, 노인은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긴 여정을 돌아보며 때로는 눈웃음을 짓고 때로는 눈시울을 적시지 않았을까.
벤치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다본다. 저 바다의 모습은 우리네 인생의 파노라마다.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수평선 위로 드러나는 새벽 여명을 맞으며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그래서 새해 첫날이면 만인이 동해 일출을 보며 새해 소망을 기원한다. 부모, 가족의 축복 속에 갓 태어난 아기는 일출과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후 삶은 만경창파 일엽편주萬頃蒼波 一葉片舟다. 망망대해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에 몸을 맡겨 두둥실 떠가는 쪽배일 뿐이다. 잔잔하던 물결도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세차게 춤추고 쪽배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다. 바다의 색깔은 비추는 햇살과 파고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연푸른색, 감청색, 코발트색, 황갈색…. 삶은 카멜레온이다. 중천에 떠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태양같이 전성기에 이른다. 그 후 해 질 녘 낙조가 되어 황혼기에 접어든다. 어둑한 바다에는 달이 차서 쪽배가 가는 길을 은은하게 밝힌다. 달이 기울면 삶도 저문다.
일몰이다. 해수면은 주홍빛으로 이글거리고 수평선 너머의 섬부터 서서히 가라앉는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저 멀리서 돛단배 하나가 지나간다. 어디에서 왔을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순풍을 받아 순항을 이어가기도 했을 것이고, 역풍을 맞아 난항을 거듭하기도 했을 것이다. 뱃머리가 일으킨 물거품이 선미로 이어지며 수면에 잔상을 남긴다. 그러나 압도적인 수량에 묻혀 곧 자취 없이 사라진다. 격랑에 반동하여 이는 커다란 파문도 예외가 없다. 우리가 삶이라는 바다 여기저기에 남긴 존재의 여운도 잠시 머물다가 여흔 없이 소멸해간다. 이제 저 배는 어디를 향하게 될까.
인생 항로의 해거름에 다가선 지금,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의사로서 남은 생애를 그려본다. 우선 먼 바다에서 돌아와 해안가 가직이 닻을 내리리라. 힘겨운 쪽배가 찾아들면 흘수선 아래까지 세심히 살펴 쉬어가게 하리라. 난파 위기의 쪽배를 만나면 구원의 밧줄을 걸어 육지에 안착하게 하리라. 미처 견인하지 못했다면 아늑한 조명을 밝혀 안식의 길로 인도하리라. 하는 수 없이 침몰했다면 표류한 자국이 스러지기 전에 그물을 던져 건져내리라. 그리고 그렇게 걷어 올린 마지막 항적은 능력이 닿는 대로 나만의 문장으로 바꿔 한 편의 산문에 담아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