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손등 / 강철수
아침 햇살에 창호지 문이 호박꽃처럼 환하다. 침대에 곤히 잠든 아내의 허벅지께를 슬며시 밀고 그 자리에 걸터앉는다. 아내의 손등을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뽀얗고 두툼한 손이 비단결처럼 보드랍다. 손이 두툼하면 부자로 산다는 데, 우리가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게 사는 건 아내의 두툼한 손 덕분인지도 모른다. 팔뚝까지 쓰다듬는다. 그제야 눈을 뜬 아내가 나를 올려다본다.
“괜찮아?”
“응”
아내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린다.
충전기에 꽂혀있는 아내의 휴대전화를 빼 들고 빨간불이 켜져 있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는다. 황반변성으로 시력이 약해진 아내를 위해서다.
“찬미 예수님, 성모성월 마지막 묵주기도에 초대합니다.”
성당 반 모임에서 온 초대 메시지다.
“박영희님, 사라젠 420주 상환 완료”
S 투자 증권에서 온 알림이다.
“5월 모임은 성원이 되지 않아 취소되었습니다.”
마흔 명이 넘던 회원이 여덟 명으로 줄어든 재경 K 여고 동기회에서 온 소식이다.
성당 반 모임이나 동창회 같은 외부 활동에 나가지 못한 건 꽤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증권회사와는 아직도 끈이 닿아 있는 모양이다.
아침마다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아내의 손등을 쓰다듬는다. 처음 시작은 아침 식사 독촉이 목적이었다.
“여보, 식사해요.”
“여보! 빨리 나와요.”
아침상을 차려놓고 두 번이나 소리쳐도 반응이 없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텔레비전 앞에 있었던 걸까. 아내 방으로 들어갔다. 한밤중인 양 깊이 잠들어 있었다. 흔들어 깨우기보다 손등을 쓰다듬기로 했다. 그리 시작된 아내 손등 쓰다듬기는 이제 우리 부부가 상큼한 아침을 여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작년 겨울에는 아내의 손등이 울룩불룩 검푸른색이었다. 대학병원에 이어 동네 병원에서까지 정맥주사를 하도 자주 맞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맥주사는 주로 팔꿈치 안쪽에 놓지만, 그곳이 여의찮으면 팔뚝 안쪽이나 손등으로 옮겨갔다. 주사 맞은 자리는 알코올 솜에다 테이핑까지 하지만 검푸른 상흔을 남겼다. 상흔 옆에 또 상흔 그리고 또 상흔, 그때 아내의 팔뚝 안쪽과 손등은 어느 장군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훈장처럼 검푸른 상흔으로 빼곡했다.
그리 주사를 많이 맞고 수없이 엑스레이를 찍고 여러 처방약을 먹었는데도 아내의 증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른기침은 계속되고 거식증에라도 걸린 듯 밥숟갈을 멀리했다. 내가 다니던 한방의원으로 달려갔다. 원장은 사상의학(四象醫學)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소양인(少陽人)인 나와 달리 아내는 태음인(太陰人)이라 했다. 몸을 보하는 탕약과 특효약이라는 공진단을 한 달 넘게 먹었다. 태음인에게 해롭다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인삼과 꿀은 얼씬도 못 하게 했다. 하지만 아내의 증상은 그대로였다. 기진맥진, 아내는 암 환자가 먹는다는 영양음료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사지의 근육이 모두 빠져나가 허깨비처럼 앙상해진 아내는 세찬 바람에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얼굴에 핀 저승꽃이 더 짙어지고 눈자위가 거무칙칙했다. 기력이 쇠해서인지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명치께에 무엇이 치받는 듯 통증이 왔다. 어쩌면 아내는 머지않아 하늘의 별이 될지도 모른다 싶었다. 아내가 없는 혼자의 삶,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식놈들은 나를 위한답시고 실버타운이나 요양원을 수소문하고 다닐 게 아닌가. 더욱 슬펐던 건 그즈음 아내가 자신이 갖고 있던 유가 증권을 소리소문 없이 손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아, 아내도 떠날 준비를….
눈앞이 캄캄했다. 안식년을 맞아 외국에 나가 있는 셋째네에게 속히 들어오라는 문자를 띄웠다. 평생 가슴 칠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싶어서였다. 아내의 여든여섯 번째 생일은 2월 9일이었다. 예년과 달리 호텔급이라는 ‘부페파크’에 예약했다. 이전에는 부르지 않던 사촌 처남들도 초대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생일잔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날마다 날마다 하늘에 빌었다. 걸으면서 빌고 양치하면서도 빌었다. 평생의 잘못을 하나하나 뉘우치고 또 뉘우치며 아내를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내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를, 주님께서 아내를 긍휼히 여기사 치유의 은사를 베풀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아내는 기침을 쏟아내고 비틀거리면서도 새벽 방송미사에는 빠지는 일이 없었다. 서 있을 수가 없어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도했다. 나는 울면서 기도했다. 미사가 끝날 즘의 ‘평화를 빕니다.’라는 순서에서는 아내 곁으로 내달아 내 볼을 아내 볼에 비벼대며 흐느꼈다.
봄이 오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나무들이 슬금슬금 새순을 내밀고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어쩐 일인지 아내의 기침이 숙지근해졌다. 밥도 몇 숟가락 정도는 마다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옆집 마리아 씨의 도움을 받아 보행 보조기를 밀며 어린이 놀이터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보름쯤이 더 지나서는 기침이 완전히 멎고 식사량도 늘어 밥 반 공기 정도는 달게 먹었다. 그때부턴 보행 보조기는 밀쳐 놓고 지팡이만 짚고도 그곳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4월 어느 날이던가. 마리아 씨가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온다기에 내가 나섰다. 운동화 꺾어 신고 아장아장 걸으면서도 아내는 내 손은 잡지 않았다. 왕복 750걸음 거리인 그곳에는 그네 의자가 있었다. 나란히 앉아 그네 타듯 발을 굴렀다. 앞으로 휙 뒤로 휙, 정발산 잣나무 숲이 코끝에 닿을 듯 말 듯,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벙글었다. 가만히 아내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주사 상흔이 말끔히 가셔진 아내의 손등은 뽀얗고 두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