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석童子石 / 강연희
오름에 오른다. 잔잔히 부는 바람에 톱니 모양의 고사리 잎이 낭창거린다. 습기를 머금은 진초록의 이끼는 연붉은 화산토를 품고 있다. 오름에는 자연을 이루는 영혼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바람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봉긋한 오름의 풍경에 마음을 내려놓으니 벌써 편안함이 다가온다. 세월의 이야기를 품은 오름 한가운데 서 있다.
제주의 오름에서는 흔히 네모지게 검정 띠를 두른 산담을 마주하게 된다. 방목해서 키우는 소나 말 같은 가축으로부터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주위에 돌을 쌓아 둘렀다. 자손들은 돌을 쌓아 올리며 망자가 평안히 잠들기를 비손했다. 구멍이 숭숭 난 돌담마다 떠난 이를 위한 자손들의 염원이 그득하다.
산담은 잠든 이가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영혼의 공간이다. 잠든 이를 위한 울타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품고 있는 성역이다. 산담 한쪽에 영혼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인 신문神門을 내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고 죽음도 삶의 연장이라는 옛 어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산담 안에는 오래된 동자석, 돌사람이 서 있다. 그의 얼굴은 내 곁에 있는 이웃이나 형제들 같은 모습으로 친근감을 준다.
동자석은 망자의 발치 아래 가장 가깝게 서서 말없이 위무해 준다. 산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 쏟아 지는 햇살과 비바람을 견뎌낸다. 밤에는 별을 품고 단단한 고독을 움켜쥔 정적마저 삼키며 그 자리에 서 있다. 어린 나이지만 자기 영혼을 알기 위해서 고뇌하는지도 모른다. 망자와의 영혼을 교감하는 벗이자 영원한 동반자이다.
자손들은 어린아이 형상으로 동자석을 무덤에 세웠다. 망자의 혼을 받들고 위로와 수발을 대신해 주기를 기원했다. 떠난 이를 위해 남은 이의 간절한 마음의 표출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영혼 불멸을 생각하면서 동자석을 세운 것은 아닐까. 동자석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인연의 끈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돌을 신성시했다. 신전, 사원, 석상을 만들며 돌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돌로 사람의 형상도 만들었다. 돌을 쪼아 온갖 물건을 만들었던 돌챙이石工는 마을에 상喪이 나면 동자석을 부탁받았다. 만들고자 하는 형상을 염두에 두어 허공을 가르며 돌망치와 정을 내리쳤다. 돌을 깨고 다듬고 쌓을 때마다 오롯한 마음을 담았다. 거침없이 내리치는 메질에 삶의 무게를 내려놓았을까. 헤아릴 수 없이 흘러내린 석공의 눈물과 한숨과 속울음을 품은 돌이기에 언제나 침묵하는가 보다.
돌은 영원불멸을 상징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태생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거부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 뿌리를 내린 바위산부터 바윗돌, 돌멩이, 자갈돌, 모래알까지 천성대로 세월을 품는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자책하지 않는다. 이기철 시인은 이 세상 모든 것 중에 기다려도 기다려도 지치지 않는 게 돌밖에 없다고 노래했다. 돌의 영원성을 되새겨 본다. 무념 무상한 돌의 숙명을 되씹어 보며 그를 대할 때마다 무욕의 삶을 배우게 된다.
긴 세월을 품은 동자석은 이목구비가 무뎌졌다. 댕기 머리에 붓과 먹과 벼루를 들고 함빡 웃는 동자를 만났다. 생전에 전하지 못한 망자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받아쓰는 총명한 동자라는 생각이 든다. 현무암의 거친 질감에도 선명한 모습으로 표현된 숟가락과 주걱을 든 돌사람 앞에선 애잔함을 느끼게 된다. 저승에서라도 하루하루 배부르게 지내기를 소망하는 자손들의 마음을 품고 있다. 술잔을 올리는 쌍상투 동자의 모습은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다. 이승에서 못 해 드린 효도를 자손 대신 전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동자석의 모습은 삶의 아쉬움을 담고 있다. 인간의 아쉬움과 모자람 같은 근원적인 욕구가 돌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동자석도 부서지면 산담 돌무더기에 함께 쌓았다. 잘 다듬어 표현하려는 얼굴과 달리 하반신 아래는 거칠게 다듬어 땅속에 박힌 채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동자석은 지키던 무덤을 이장하면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에 자신이 서 있던 땅 아래에 묻혔다. 산담을 떠나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다. 예로부터 분묘 석물을 신성시하고 터부시하는 풍습에서 유래한다. 동자석은 망자와 함께 죽음의 공간에 있어야 할 동반자로 여겼다. 남은 이들이 분출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잘 살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를 담고 있다.
인간의 본능은 희망이라 생각하는 바를 향해 전진한다. 전진은 변화를 뜻한다. 변화를 통해 삶의 목표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 동자석도 이처럼 걸어 나갈 수 있다면, 자손들의 부귀와 무사 안녕을 염원하는 망자의 마음을, 조상을 향한 자손들의 곡진한 마음을 들려줄 수 있을 터이다. 한참 뛰어다닐 동자가 온종일 망자와 함께 숙연한 자태로 서 있는 기구한 운명에 가슴이 시려온다.
산담은 허물어지고 망자가 영면할 공간도 변화하고 있다. 무덤의 석물도 필요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동자석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가 머무를 곳은 어디인가. 동자석은 어린이가 사라져 가는 오늘과 같은 세상을 오래전에 예견이라도 했던가 보다.
유한한 인생길에서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고 그 종착역은 죽음이다. 산다는 것은 마지막 인생 역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삶의 완성은 죽음이고,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일이다. 삶을 잘 살아간다면 죽음 또한 의연히 맞이할 수 있으리라.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혼, 마음은‘나’의 근원이다. 바른 마음을 챙기는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이다.‘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또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아는 것은 온전한 마음의 발견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성숙한 영혼을 키워 가는 여정이다. 몸뚱이는 살아갈수록 가뭇없이 쇠락해진다. 내 인생에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늙음이 서서히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평생 함께한 인생 외투를 벗을 때가 머지않았다. 육신의 맑은 영혼을 지켜낼 수 있게 가진 것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 가벼이 버릴 수 있는 삶의 옷을 걸쳐야 한다. 삶의 마무리에 대한 자세를 되짚어 본다.
오름에서 만져보는 햇살과 들이마시는 자연의 소리는 충만감을 느끼게 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내 안의 나를 찾는 일이다. 오름은 오롯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쉼터이다. 오름을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호오ㅡ휘이이익”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사위의 정적을 깨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