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거짓말 / 최연실
뭍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오는 길이다. 여느 때처럼 운전석에 앉아 USB에 담긴 음악을 켠다. 가수 ‘이적’ 의 <거짓말, 거짓말>이란 곡이 차 안의 공기를 혼탁하 게 만든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 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나도, 남동생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며 어린아이처 럼 보채는 어머니를 달랜 게 두어 달 전이다. 요양원으 로 간 어머니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면회 할 때마다 언제 집으로 갈 수 있는지를 되물었다. 동생 의 처지를 알기에 간절한 눈빛으로만 어머니께 속내를 드러냈다.
동생 집은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버스로 한 정거 장쯤 떨어진 곳에 있다. 삼십 평 남짓한 빌라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조카들은 사회 초년생이 될 때까지도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불협화음이 일 렁이면 동생은 숨을 곳이 마땅찮았다. 한집의 가장이 한 없이 초라해지는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어깨가 묵직했 다. 누이로서 동생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어머니를 뵙고 온 그날도 동생 집에 들렀다. 마중 나온 동생의 숨소리 가 거칠고 깊었다.
“누나! 먼저 들어가요. 옥상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갈게요.”
동생은 현관의 비밀번호를 눌러 주곤 계단에 발을 디 뎠다. 한마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간신히 참았 다. 보약도 아닌 걸 그만 끊으라고 뒤통수에다 소리 지 를 뻔했다. 하지만 그 심정을 모르지 않기에 얼른 말을 삼켰다.
현관문이 열리자 금방 이삿짐을 푼 집처럼 어수선했 다. 어느 방에선가 나온 옷가지들이 거실 한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찬찬히 둘러보니 며칠 전까지 어머 니가 쓰던 물건과 입던 옷, 덥던 이불들이다. 옷 무더기 속에 뱀처럼 똬리를 튼 올케가 나를 보더니 당황해하면 서도 반갑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어색하고 낯 설었다. 마치 이곳에 있으면 절대 안 되는 물건들을 고 르듯 연신 올케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어머니 방에 온전히 있어야 할 것들이 끝없이 재활용 봉투로 들어갔다. 육식 동물이 초식 동물을 꾸역꾸역 입 으로 처넣는 것 같았다. 눈앞의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심 장이 요동쳤다. 나는 겁에 질려 심장을 움켜쥐었다. 동 생에게 서운함보다 배신감이 들었다. 귀띔이라도 해 주 었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아니, 내가 동생에게 미리 전화했더라면 마음의 준비는 했을 터인데…. 감정이 쉽 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제야 한숨을 길게 뱉던 동생을 떠올렸다. 지난주만 해도 어머니를 집으로 다시 모시고 싶다고 탄식하던 동 생이었다. 나는 동생의 어려움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 다. 어떻게든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옥상에서 내려온 동생이 건네는 머그잔을 받아서 들 었다.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다 식어버린 커피가 마치 동생에 대한 내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머그잔을 들고 어머니가 머물렀던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어머니의 온기가 침대에, 작은 경대에, 옷장의 문고리에 남아 있었다. 핼쑥한 얼굴에 작은 보조개를 만 들며 웃던 어머니였다. 막내딸이 왔다며 좋아하던 모습 이 엊그제였다. 내가 사드린 팥죽색 패딩을 입고 방문을 나가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순간, 뭐가 그리도 급하 냐고 밖을 향해 소리라도 냅다 지르고 싶었다.
지금 모든 책임을 동생에게 떠넘기면 안 된다는 걸 나 는 알았다. 서로가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어머니도, 동 생도 나는 잃고 말 것이었다. 머릿속에 실타래가 엉킨 것 처럼 무거운 두통이 몰려왔다. 진즉, 넓은 평수로 이사 하고 싶다 했을 때 도와주지 못한 걸 후회했다. 다음 이 사에는 꼭 보태겠다고 설레발치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 다렸던 내가 어리석었다.
어느새 공항에서 출발했던 차는 집을 향해 가는 마지 막 오르막을 오른다. 오늘따라 아무리 숨을 고르게 쉬어도 체증처럼 자리 잡은 고통의 추는 버겁기만 하다. 어 머니를 위해 내가 무엇을 했다고…. 오롯이 동생한테 짐 을 지게 했으면서 섭섭했노라고, 잘못했노라고 그럴 자 격이 있을까. 내가 이리 괴로운데 동생은 오죽할까, 핸 드폰의 단축 번호를 길게 누른다.
“누나야! 나라도 그리했을 거야, 쉬어라.” 내심 다른 형제들이 너를 비난하면 바람막이가 되어 주겠노라며 나는 또 거짓말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