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제비에 새겨진 마음 / 김규인
현판 뒤로 난 일곱 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한 칸의 맞배지붕을 한 비각 안에 두 개의 비가 나란히 자리한다. 오른쪽으로 돌면 보물 제517호 영천 청제비가 보인다. 비(雨)에 젖을세라 비각은 겹으로 길게 처마를 내고 비(碑)를 품는다.
단칸 목조 비각에 들어가기까지 비는 허리가 부러지고 수백 년간 땅속에 묻혀 암울한 시간을 보냈다. 부러지고 비바람에 몸이 깎이던 시간도 지나갔다. 청제비는 부적처럼 몸에 글자를 깊이 새기고 세월을 삭였다. 세월도 삭으면 좋은 시절이 오는지, 팔작지붕의 새집을 마련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글자는 몸을 지켜주는 부(符)다. 의미 있는 글자를 몸의 앞뒤로 새겼기에 살아남았다. 덩치만 커다란 바위였으면 다시 빛을 볼 수 있었을까. 허리가 부러지며 땅에 묻히는 두 번의 힘든 시기를 이겨낸 것도 몸에 아로새겨진 글자의 덕을 본다. 깊게 새겨진 글자는 사람을 부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읽게 만들고 세우게 하고 깨우쳐 준다.
인류의 역사는 글자로 인간사를 기록하는 시대와 그렇지 못한 시대로 나눈다. 기록은 생각을 쌓는 일이다. 한 사람의 생각에 다른 사람의 것을 보탠다. 생각의 자양분이 많으면 문명은 더욱 낫고 좋은 상태로 된다. 깊게 파여진 글자는 문명의 깊이를 더 한다. 넓고 깊은 기록이 있어야만 찬란한 문명을 낳는다.
고고학자들은 비와 바람에 닳은 글자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닳아버린 글자 한 자가 가지는 의미만큼 아쉬움도 크다. 훼손된 글자에 대한 미련으로 남은 글자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은 이두(吏讀)가 조용히 웃는다. 남의 옷을 입은 우리 글이 신라인의 삶을 차분히 일러준다.
비석이라면 받침대 위에 단정히 앉아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받침대도 없이 청제비는 흙바닥에 몸을 박고 섰다. 어쩌면 그간의 허리가 부러지는 고통에 비하면 별거 아닐지라도 속이 상한다. 맨바닥에 자신을 묻어버린 섭섭함으로 뒤로 돌아앉은 청제비를 본다. 무엇이 그를 아프게 하는가. 비를 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무지에 대한 속상한 마음이 정원년비를 앞세우고 자신은 돌아앉는다.
청제비는 언제나 청못과 운명을 같이한다. 청제비가 두 동강이 나자 청못도 두 동강이 난다. 청못을 두 동강 낸 경부고속도로에 자동차는 무심하게 달린다. 청제비가 온전했더라면 청못도 온전했으리. 우연일까, 청제비를 이어주니 청못도 경부고속도로 밑으로 물이 만나게 수로를 만든다. 다시 하나가 된다.
청못에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청제비와 정원년 비도 청못이 오래도록 못으로서 역할을 바라는 응원을 보낸다. 더구나 청못은 세 개의 비가 마음을 전하지 않는가. 청제중립비는 말한다. ‘아! 후인들이 이 비로 말미암아 청제를 허물지 않는데 생각이 미친다면 이 비가 청제에 도움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영천의 도남들에는 청못의 따스함이 아직도 흐른다. 신라인의 마음이 함께한다.
청제비를 읽으면, 못을 만들어 꼼꼼히 관리했고 경지에 물을 대는 농업 기술이 발달했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글자 하나하나가 그 시대 사회의 생생한 얼굴을 하고 있다. 청제비는 공사의 규모, 청못의 면적, 동원된 인원수, 청못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농지 면적, 공사를 담당한 사람의 이름을 들려준다. 공사에 대한 기록으로 갖추어야 할 것은 모두 갖추었다고 말한다.
왕의 기우제는 의식일 뿐이다. 가뭄을 대비해 물을 저장하는 것이 실용이다. 신라는 저수지를 만드는 데 적극적인 왕들이 있었다. 백성의 살림이 윤택해져야 나라도 힘을 얻는다. 못을 만들고 물이 새는 곳을 꼼꼼히 챙기는 훌륭한 군주가 있었다. 더하여 일을 빈틈없이 관리하고 기록했기에 주변국에 비해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신라는 가야와 조문국을 정벌한 뒤 맨 먼저 그 나라의 기록을 없앴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일은 못 하나를 세운 일도 꼼꼼히 기록하면서 정복한 국가의 기록을 완전히 지우는 것은 기록이 사람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전설 같은 희미한 이야기가 되고, 기록은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진다. 신라는 정벌한 국가의 백성들이 통일된 신라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누군가가 길을 내면 다음 사람이 쉽게 간다. 누군가가 황무지를 개간하면 다음 세대가 곡식을 얻는다. 햇빛이 강하고 비가 적게 오는 영천에 신라는 많은 못을 만들었다. 못이 가장 많았기에 쌀이 많이 나는 지역이 되었고 삼국 통일의 단단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부자 도시였기에 조선통신사도 빠뜨리지 않고 영천에 들러 농익은 막걸리 술잔을 기울이며 여독을 풀었다.
지나간 문화를 돌아보는데 한 줄의 글은 소중하다. 하나의 단어로 사물을 확인하고 한 줄의 글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사실이 되고 하나의 문단으로 명확한 역사가 된다. 신라인이 남긴 청제비로 신라에 한 발 더 다가선 나를 본다. 신라인들이 나에게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신라인이 쌓은 못 둑을 따라 걷는다. 신라의 장인이 손을 내민다. 한 줌 한 줌 흙을 모아 못을 쌓느라 힘들었노라 말한다. 그러한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은 청제비와 청못을 남겨 뿌듯하다고 자랑한다. 못을 쌓음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통일의 바탕이 되었다고 어깨에 힘을 준다. 땀 흘린 대가로 지금껏 농사를 잘 짓고 있지 않으냐고 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