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방 / 김경혜

남편의 검정 니트 목폴라가 눈에 들어왔다. 방문 앞 턱걸이 봉에 세로로 걸려있어 반만 보이는. 이상하게 자꾸 시선이 갔다. 저 이미지에 왜 마음이 끌렸을까.

 

38년째 함께 살고 있는 사람. 목폴라의 모습처럼 남편의 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니트 목폴라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는 참 열심히 산다. 친구들은 모두 은퇴했음에도 아직 자신의 일터에 머문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 또한 간섭받지 않고 살기를 원한다. 따로 또 같이의 삶은 합리적이기도 편안하기도 하지만 종종 외로움을 부른다. 다정다감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부부를 보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런 그와 살다 보니 내 외로움이 안개처럼 집안 곳곳에 퍼져 있는 듯하다. 바람 부는 날 창문을 열면 잠시 걷히기도 하지만 새로운 안개가 그 자리를 메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내 서재에서 혼자 삶의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맞춰보려 애쓴다. 잃어버린 조각들도 있고 도저히 위치를 알 수 없는 조각들도 생겨날 테지만….

 

그도 나처럼 외로움을 느낄 테지. 잠만 자는 공간이 되어버린 자신의 방에서보다 회사의 자기 방에서 더 쉼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마음이 외로움으로 물들 때면 뛰러 나가려나. 전에 그가 말했다. 달리다 보면 어느새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어 편안해진다고.

 

마치 그를 본 듯 걸려있는 옷에 감정이 투영된다. 그의 표상 앞에서 내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어째 좀 쓸쓸하고도 민망하다. 그러나 요즘 내 안에 가득한 공허함을 표현하기 딱 좋은 대상이 말을 걸어오다니….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어째서였을까.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이기호의 짧은 소설 <아내의 방>이 떠오른다.

 

아내에 대해, 엄마에 대해 묻지 않는 가족. 아내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며 가족들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해낸다. 언젠가부터 베란다로 자신의 거처를 옮긴 아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간이침대에서 책을 읽고 빨래를 개고 아파트 앞 동의 불 켜진 주방에서 일하는 아내들을 바라보고 TV를 쳐다보다 잠든다. 참다못해 남편이 소리 지른다. “그게 뭐 하는 짓이냐고, 그게 무슨 청승이냐고.” 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몸에 열이 많아서, 여기가 편해서 그런다고만 하니 말문이 막힌다며, 그 같은 상황에 대해 “다른 문제가 전혀 없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런 아내가 ‘목이 늘어난 티셔츠’ 한 장만을 건조대 위에 남겨놓고 사라진다. 가족들이 거실에 있을 때 현관문 여는 소리도 없이 연기처럼. 뛰어내린 줄로만 안 남편은 1층 정원부터 살펴보았으나 아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집안 그 어디에서도. 아무도 그런 상황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며 실종신고조차 망설이는 남편. 그런 남편은 ‘정말 자신의 아내가 빨래가 되어버린 거냐고,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항변한다.

 

소설 속 아내의 모습이 나인 듯도 하고 내 친구의 모습인 듯도 해 읽는 내내 가슴 가득 눈물이 고였다. 날마다 조금씩 스며든 외로움과 불안에 잠식당한 채 아내는 자기도 모르게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 유리창 너머로 바라다본 가족과 자신과의 거리. 있어도 없는 듯 없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찾아 나선 것일 수도…. ”목이 늘어난 티셔츠가 건조대 위에 놓여 있었다.“는 구절에서 내 마음이 역할의 옷을 벗어놓은 그녀의 마음에 잇대어졌다. 어쩌면 많은 아내들의 마음이 그랬을지도. 잇닿은 마음들이 밤새 수런거렸을 그날의 슬프고도 아릿한 정경이라니.

 

목폴라 사진을 보다 갑자기 소설 속 건조대 위에 걸쳐져 있던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목폴라가 오버랩 되었다. 그동안 남편은 자신의 존재가 야금야금 사라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소설 속 남편처럼 ‘가장은 돈 버는 일에 매진해야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약해지려는 자신을 달리기로 다잡았을까. 그는 달리며 자신에게 묻어있는 불안과 고독을 털어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라는 생각과 함께.

 

남편의 방에 불을 밝혔다.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지 말고 저 옷 좀 제자리에 걸어 달’라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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