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 김상영

 “상영이 니는 부자 될 끼라.”

외조모가 외가 사립문을 나서며 솟을대문 닮은 내 치아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앞니 두 개가 유난히 넓적했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시절임에도 말씀하신 곳까지 선명하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게다. 그런 복니를 신주 모시듯 정하게 살아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해 여름 진해 통제부 연병장에서 해군 동기들은 내리쬐는 땡볕 아래 혼이 빠지도록 훈련을 받고 있었다. M1 소총 16개 동작을 시연하던 그때 ‘어깨너머 총’ 단계에서 동기 녀석의 총구가 꺼떡거리며 내 입술을 찍었다. 그 섬찟한 “짜그닥”소리를 잊지 못한다. 항상 내 앞이던 녀석의 깨복쟁이 동그란 얼굴도 선명하다. 당나발 주둥이야 쉬 나았지만, 치아가 욱신거렸다. 대문니와 송곳니 사이 치아 하나가 까딱이는 품이 아무래도 탈이 난 것 같았다.

깨지고 또 일어서기 예사인 초년 시절이라 개길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며 함정 근무를 계속했다. 그렇지만 뿌리에 금 간 치아가 다시 붙을 리 없었다. 아뿔싸! 급기야 동해를 항해하는 구축함 식탁 위에 내 이를 톡 뱉어낼 줄이야. 칫솔질을 정성껏 하고 혀끝으로 살살 쓰다듬길 게을리하지 않은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앞니 빠진 갈가지 앞 냇가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린다.”

젖니가 빠져 뻐끔한 동무를 놀려대던 꼴을 대한민국 젠틀맨이 겪게 됐으니 난감했다. 이 사이만 벌어져도 바보 같은데 앞니 하나가 비었으니 오죽하랴. 입항하자마자 군 병원에서 뿌리를 뽑고 보철하게 되었다. 임플란트를 모르던 시절이라 치아 하나를 보완하고자 멀쩡한 대문니와 송곳니를 갈아서 씌울 수밖에 없었다. 상판을 얹기 위해 양쪽 교량이 세워지듯 말이다. 그 아까운 대문 하나가 결딴나는 바람에, 부자 꿈도 허황하게 멀어져 갔다.

외조모님 덕담이 물 건너간 그 무렵 부친이 세상을 뜨셨다. 선친 묘를 쓰는 날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상포 자락 서걱이며 요령 소리 따라가던 숨 가쁜 오르막길 끝이 장지였다. 조부 조모님 당신 묘소 옆에 맏이를 묻겠다고 고했다. 그런데 유골을 모실 광파기가 순탄치 않았다. 쉰일곱 한창나이에 성급히 저승 문을 두드린 선친을 꾸중하시는 듯했다. 비탈진 바위산이어서 힘깨나 쓰는 장정 여럿이 번갈아 가며 곡괭이질을 해댔지만 어림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이걸 어쩌나 싶은 듯 맏상제인 내 눈치를 연신 살폈다. 연장 튕기며 헛고생하는 사태를 더 두고 볼 수 없어서 그만들 하시라 일렀다.

허공을 향해 누우신 선친의 관은 반이나 한데로 드러나 홑겹 베옷 차림이 한층 썰렁해 보였다. 봉분이 내려앉든 말든 그건 훗날의 일, 차라리 관 뚜껑이라도 벗기지 말고 흙을 덮을 걸 싶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맏이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책감에 사무쳐 울었다. 첫 봉급을 봇돌 삼아 송아지 한 마리만 세웠을 뿐, 외상 술값조차 갚아드리지 못하고 살았다. 처자식이 눈에 밟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회한이 깊었다.

봉분이 솟고 장제가 끝났을 때 지관이 다가와 넌지시 말했다.

“산세가 명당이라 부자 될 세.”

지관의 시선 끝 뿌연 능선이 인근 천년고찰 운람사에서 건너다본 산세와 비슷하였다. 부처님 얼굴을 닮은 완만한 곡선의 팔공산이 아득히 보였다. 운람사 기를 받았음 직한 터에 갓 쓰고 도포 차림의 점잖으신 지관 모습이 부자가 된다는 말에 신뢰를 더했다. 비록 어설픈 심사를 달래주려 한 덕담에 불과할지라도 마음이 푸근해졌다. 부자가 될 거라는 예언이 외조모님으로부터 지관에까지 이어지자, 참말이리란 심증이 굳어져 갔다.

좋은 날 오리라 고대하던 하세월 끝에 어느덧 딸내미 혼기가 찼다. 용하다는 팔공산 어느 철학관에 궁합을 보러 가게 되었다. 작달막한 영감이 돋보기안경 너머로 우리 부부를 꿰뚫었다. 달력 자른 허드레 종이에 글씬지 그림인지 끄적이던 영감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하였다.

“좋네, 좋군.”

사위가 금 하난 데 딸내미는 금금金金이라 금고가 둘이란다. 딸내미가 밑진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으나, 돈 세상에 돈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내 팔자도 넌지시 물었더니 얼추 맞아떨어졌다. 복채도 기 만 원에 불과한 것이, 이득을 추구하지 아니하는, 선비만 같아 신뢰를 더 하였다. 족집게 영감이 무서운 나는 화장실을 찾는 척 슬며시 피하고 말았다. 못된 괘가 나오면 아니 들은 만 못할 것이라 여겨져서다. 아내는 내 팔자도 넌지시 물어봤겠지만, 사주를 모르니 두루뭉술한 답변만 들었을 것이다.

영감이야 사주고 뭐고 한눈에 넘겨짚었겠지만, 나도 금고가 둘일 것만 같았다. 외조모님과 지관 어르신이 일러둔 말씀이 아니더냐. 그런데 세월만 가지, 도무지 부자 될 낌새가 없다. 딸내미네는 벌써 집이 두 채에다 제주도에 가서 몇 달씩 살다 온다. 그렇다면 로또밖에 더 있나. 간간이 복권을 사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부자 되길 빌어주신 외조모님과 지관 어르신이 세상 뜬 지 오래다. 귀향 십여 년간 유명을 달리하신 이웃 어르신도 여럿이다. 평곡 어른이 앞섰고, 최 씨와 손 씨 양반, 그리고 순호 댁이 뒤따랐다. 건넛마을 본동 댁도 있다. 그분들 모두 짜장면 한 그릇에 소주 일병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다 가셨다.

초승달이 서산마루에 걸렸다. 새벽잠 엷어 서산을 처연하게 보는 날이 더러 있다. 운람사 가는 조붓한 길이 그 산마루에 걸려있어 마치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연상케 한다.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그리는 마음인 게다.

아랫집 할머니 세상 뜨고 난 빈집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억척스레 돈 모으다가 빈손으로 가신 어른이다.

“돈 돈 하지 마라, 마음 편한 게 최고니라.”

어느 가을날 무심결에 던진 말씀이 다가선다. 그래, 무심한 덕담 두어 마디에 홀려 팔자에 없는 돈복을 고대한 내가 못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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