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 / 강연희
영산(靈山)은 누구에게나 그 속살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가 보다. 천문산의 ‘천문(天門)’까지 가는 길은 험하고 멀었다. 천문은 장가계 시내에서도 보일 만큼 존재감을 드러낸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그 자체가 신묘한 기운을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벌써부터 심장이 올랑거린다. 천문 저 너머의 세상은 어디일까.
잔도(벼랑길)를 걷는다. 발아래 펼쳐지는 천 길 낭떠러지 밑 협곡의 풍광은 원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인류의 시원인 곳처럼 느껴진다. 신비롭게 늘어선 바위산 봉우리들이 품은 세월의 적층은 자존감을 드러낸다. 신이 빚고 세월이 키운 대자연의 위력에 압도당하는 기분마저 든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이곳이야말로 선계(仙界)이리라.
걷기조차 아찔한 잔도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불가능한 일을 해낸 초인적인 인간의 의지를 되새겨 본다. 인간 승리이다. 인간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벼랑길을 만들며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원혼이 잔도 곳곳에 부유하는 듯하다. 그들이 부르는 영혼의 노래가 바람결에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 허공에 몸을 매달았던 그들의 값진 희생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우리가 편안하게 걷는 길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고와 희생 덕분일 터이다. 나 자신이 걸어온 길도 내 삶의 노고 덕분이다. 원시의 길에서 문명의 길로, 나의 길에서 세상의 길로 나아가는 길은 항상 힘들고 고달픈 여정이었다.
벼랑길 울타리와 나뭇가지마다 겹겹이 쌓인 붉은 매듭의 숲에 내 영혼이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매듭은 부유하는 원혼들의 이루지 못한 꿈이 스며들어 핏빛으로 보인다. 그들은 남은 피붙이들의 무사 안녕을 붉은 매듭에 염원했으리라. 가슴이 시려온다. 바람이 소리 내어 운다. 소망을 품은 붉은 리본이 바람결에 춤을 춘다. 매듭은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있는 강렬한 소원이 빛을 이루어 붉게 타오르는 꽃숭어리 모습이다. 불꽃의 춤을 보는 듯하다.
심신의 피로를 제쳐놓고 험하고 높은 곳까지 와서 매듭을 지은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단단한 소망이 붉은 마음으로 묶여 있다. 그만큼 소원이 절절할 터이다. 하늘에 가까이 가닿을수록 소망이 이뤄지리라 비손했을 그들의 마음을 읽어 본다. 휘날리는 붉은 리본 매듭에 나의 소원도 얹어 본다.
세상살이는 만물과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일과의 관계 맺음으로 세상과 우주가 만들어진다. 관계 맺음이란 연결 고리로 이어지는 또 다른 매듭이다. 살아가면서 사람과 일에 매듭을 풀고 묶는 것은 수없이 겪게 되는 일이다. 매듭은 자신이 낀 안경 너머로 본 세상의 이치를 판단하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부질없는 가치로 매듭을 잘못 묶거나 풀 때는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경우도 있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매듭은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자매처럼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단단한 매듭으로 묶여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천륜(天倫) 관계이다. 자식은 태어나면서 부모와의 천륜을 이어간다. 자식을 낳은 부모는 생의 무거운 껍데기를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한다. 거부할 수 없는 생의 무게를 짊어진다. 자식들을 향한 가없는 사랑을 숙명으로 품는다. 부부는 백년해로의 언약을 동심결(同心結) 매듭으로 맺는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인생의 동반자, 친구, 연인처럼 살아간다. 인생 여정에서 묶인 매듭이 풀리지 않게 서로 하심(下心)으로 살아가려 애쓴다.
흔히 말하는 하심이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마음이며 진리 앞에서 겸손한 마음이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 방황의 길을 헤매온 것이 아닌가. 바라본 시선이 저 푸른 하늘과 푸른 나무가 아니라 이 세상의 아픔과 상처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가. 얼마나 마음을 내려놓아 저 바닥의 하심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진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여태껏 품어온 사랑, 기쁨, 감사, 좋은 인연의 매듭은 더 단단히 묶고 싶다. 귀한 것일수록 공들여야 한다. 내게서 멀리 도망가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바른 마음 챙김이 필요할 터이다.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타심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묶고 싶은 매듭의 가치는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살아갈 의미를 부여한다.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타자에 대한 미움, 분노, 악연으로 묶어진 매듭은 하나씩 풀어야 할 때이다. 주관적인 가치 판단과 이기심이 마음의 문을 닫아 매듭으로 묶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이해되나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생각이 다르고 오해로 빚어진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 사람과의 매듭을 묶은 후부터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타자를 수용하려는 마음 씀씀이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나를 내리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관용의 마음은 곧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절에서 영가(靈駕, 망자의 불교 용어)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관음시식’ 중간에 묵은 원한이 풀리길 바라는 ‘해원결진언(解怨結眞言)’이 나온다. 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진언으로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이다. 생전에 화해하지 못해서 원한이 맺혀 있으면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승에서 지은 마음의 빚을 정리하고 떠나야 함을 일깨워주는 진언이다. 어둠과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밝은 지혜를 찾아가기를 바라는 가르침이다. 밝음은 부족한 것을 알고 채울 만한 것을 받아들일 때 이뤄진다. 지혜의 완성이나 깨달음은 어리석음의 어둠을 벗어날 때 가능하다.
알게 모르게 바르지 못한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상대방도 원한의 매듭을 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승은 물론 전생으로부터 이어온 원한의 매듭을 훌훌 풀고 가벼이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지만 원한의 매듭이 될 수 있는 모든 오해가 풀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리라. 누군가를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해서 마음이 모질고 매섭게 될 때 진창 같은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때를 반성하게 된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내려놓아야 비워지고 가벼워지지 않겠는가.
삶의 결이 사람마다 다르듯 매듭을 묶고 푸는 방법도 다양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듭을 묶고 풀기도 한다. 세상사에는 많은 색깔이 담겨 있는 매듭이 있다. 매듭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스며있으리라. 매듭을 묶고 싶은 올바른 가치와 좋은 감정을 키워 물이 흘러가듯이 순리대로 살아가고 싶다.
서쪽 하늘로 기우는 해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어둠을 불러들이는 산 그림자의 짙은 적막이 스며든다. 멀리 등 뒤로 천문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올라갈 때 본 모습보다 내려올 때 느끼는 천문은 더욱 웅장하게 보인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품어 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언젠가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다. 하늘과 맞닿게 보인다. 붉은 리본 매듭을 묶은 누군가의 소망과 나의 바람을 천문 속으로 띄워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