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나선자

집에는 여러 개의 의자가 있다. 화장대 의자가 있고 식탁의자가 있고 거실의자와 서재의자가 있다. 꽃밭을 가꾸다가 잠시 쉬곤 하는 의자는 발코니 화단 중앙에 위치한 앤티크 테이블과 세트인 동그스름한 안락의자이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의자는 화장대 의자이다. 하루 중 가장 많이 앉아 있는 의자로, 수시로 나를 바라보고 점검하는 의자이기 때문이다. 나날이 변해가는 나의 모습에 아쉽고 때론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짓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식탁 의자가 편해졌다. 이곳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풀리지 않던 생각도 산책할 때와 같이 술술 풀린다. 의자에 앉아 창 너머 하늘을 보기도 하고, 바람 따라 계절 따라 변화하는 나무를 관찰하기도 한다. 이 의자는 날마다 나를 안는다. 몇 년을 더 나를 안을지 나도 의자도 모른다. 오래도록 의자와 함께 하고 싶다. 싫증이 나지 않고 편안하니 그저 내 일부라는 생각까지 든다.

식탁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고 습작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식사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하루가 기우는 시간, 의자 등받이에 편안히 앉아 봄을 기다리며 석양을 바라본다. 저무는 서녘하늘의 여유로움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거실 의자에 앉아서는 TV 시청을 주로 한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운 시기에 트로트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나는 그 바람을 타고 갇혀 지내는 동안 트로트와 친해졌다. 어느덧 채널을 돌려가며 트로트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섭렵하는 시청자가 되어 있었다. 거실 의자는 다른 의자와 달리 앉아 있는 시간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결혼할 때 장만한 것으로 애착이 남다르다. 가죽이 오래되어 버릴까도 싶었지만 얼마 전에 리폼하여 새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리폼 가격을 생각하면 요즘 유행하는 의자로 바꿀 수 있었으나, 나만의 추억을 생각해 그만두었다. 의자는 녹색 옷에서 밝은 와인색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내 취향으로 마음에 들었다. 50년을 함께 한 인연, 나의 분신처럼 늘 함께 한 의자여서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하다.

나는 발코니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걸 즐긴다. 통유리 아래쪽으로 놀이터가 내려다보인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인데도 마냥 즐겁게 노닌다.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함께 즐거워진다. 시선을 옮겨 소나무를 보면서 언제나 좋은 기운을 받는다. 어떤 시련도 소나무처럼 굳세게 이겨 나갈 것만 같다. 통유리로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일은 나에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을 때이다. 찻잔을 들고 창밖을 보던 나는 수레를 끌고 가는 노부부를 보게 되었다. 수레에 상자를 가뜩 담고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서로의 힘을 나눠주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그들을 내려다보려니 마음이 불편했다. 찻잔을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서재에는 긴 의자와 일인용 의자가 놓여있다. 서재를 이용할 일이 드물어 그 의자들과는 가깝지 않았다. 손자 손녀가 오면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 의자에 앉는 사람이 없다. 주로 남편이 앉았던 의자로 주인이 떠난 의자가 되어버렸다. 필요한 책을 찾거나, 내게로 온 책들을 정리하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면 의자를 마주하게 된다. 그렇더라도 의자에 앉아 있기보다는 책을 정리하고 바로 나온다.

편리에 따라 의자를 달리 사용한다. 다양한 의자가 있다는 것은 각기 다른 용도가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각각의 추억과 이야기가 담겨 있어 언제 마주해도 우리 집 의자는 나에게 익숙한 존재들이다.

문득, 나는 쉬고 싶은 의자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누군가 내게 기대어 편히 쉴 수 있는 의자 같은 존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좋은 의자란 어떤 상황에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한 의자라고 생각한다.

의자가 없는 삶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쉼도, 공부도, 사교도 없는 삶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사람 만나기 어려운 세상에 의자는 기다림의 상징이요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누구든 우리 집 의자에 앉아 편안히 즐기다 가길 원한다. 하나 둘 집을 떠났지만 굳이 의자를 치우지 않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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