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와 카뮈처럼

박진희

 

  2024년 12월 3일 밤 늦게 계엄령이 훑고 지나간 후 한국정치와 사회문제로 숱한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다. L이 몇 주가 지난 후에도 견기디 힘들다는 말에 나도 잠을 설치고 불안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좀 더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니 나와 정반대의 편을 지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추운 날씨에 노인들이 아스팔트 길에 누워 반항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후원금까지 보낸다고 한다. 난 '아차' 싶어 더 이상 정치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그녀를 거의 2년 전에 만났을 때 버지니아나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이들 중에서 라이드가 필요한 한국 노인들에게 무보수로 봉사한다고 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게 하면 되지 않냐고 하자 그런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많아 오랜 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다보니 어깨에 무리가 와서 심한 통증을 호소했었다. 어쩜 그렇게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살 수 있는지 그녀가 대견스러웠다. 자신이 가진 것은 시간과 돈밖에 없다며 라이드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한국에서 미국에 와서 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제공한다기에 깜짝 놀랐다. 그런 그녀를 클리닉에서 몇 번 만나다 보니 다정한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이념적 차이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것을 진작 알고 있던 터였다. '사회적 거리'라고 해두는 게 맞는 말이지 모르겠다. 그 거리를 지켜야 한다. 그게 지나치면 완전히 멀어져 다시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와 카뮈처럼 말이다.

 

 사르트르(1905-1980)와 카뮈(1913-1960)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에 저항하며 친해졌다. 카뮈가 갓 데뷔한 서른 살에 만나 가족까지 알고 지내며 거의 매일 식사를 하며 서로 격려했다고 한다. 그러다 1945년 이후 냉전시대부터 다른 시점으로 서로 틀어지게 됐다. 마침내 1952년, 사르트르가 러시아의 '진보적 폭력'을 옹호하는 것에 격론하면서 폭력에 반대하던 카뮈가 절교를 선언했다.

 월간지 <레탕모데른> 편집장으로 있던 사르트르는 시대적 사명을 절감하며 사회변화를 원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현재 사회에 책임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앙가주망 문학론을 강조했다. 알제리 전쟁에 반대하여 그의 막대한 재산을 도네이션하고 삐라를 직접 전달하며 독립운동이 성공하도록 힘썼다. 그는 러시아 귀족의 부패로 왕조정치를 없애는 과정에서 폭력을 진보적이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가 무력으로 진업하는 과정에서 사르트르의 입장은 달라졌다. '마르크스주의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얼어붙은 도그마로 변했다'며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월남전도 비판했다. 1964년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며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

 젊은 카뮈는 일간신문 <콩바> 편집장이었다. 그는 인간사고 자체와 행동은 부조리이므로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맞서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했다. 무의미한 세계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탈피하는 방법은 'Revolt 저항'이라 했다. 부조리에 반항하는 자만이 자유를 얻으며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열정을 가지고 살기를 권고했다. 인간이 이념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공산주의 체제하의 정치범 강제수용소에서의 폭력은 타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나폴레옹을 찬양했던 헤겔을, 혁명의 인간 신격화와 스탈린과 그의 체제를 옹호하는  유럽지식계를 비판했다. 1957년 노벨상을 받으며 권력의 압박과 억압을 받더라도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을 한결같이 원했다. 1960년 46세에 돌연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사르트르는 '카뮈는 골수 휴머니스트'라며 애도했다.

 

 사르트르와 카뮈가 서로 시각과 견해가 다르다고 비난한 것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정보다는 자신의 신념만이 옳고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드릴 수 없었을까.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지만 그들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란 메시지와 비폭력에 대한 중요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영향과 울림을 준다.

 카뮈가 교통사고롤 죽었을 때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기차표의 목적지가 사르트르 집 가까운 곳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늦게나마 절교했던 것을 후회하며 찾아가는 중이었을까? 그들이 살아있었을 때 화해했다면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위대한 세기의 작가들과 비교할 것은 물론 아니지만 나처럼 아주 평범한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 솔직한 정치적 의견을 나누는 일이 조심스럽다. 만일에 같은 정치적 색체를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친해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다른 화제로 돌려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편견을 갖는 일은 불편하고 불쾌한 일을 만들 수 있다. L처럼 타인에게 라이드를 베풀며 헌신적인 태도를 가진 친절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마음 속으로나마 절교하는 일을 만들지 않는 자가 진정한 휴머니스트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