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낚는다 / 변순자

   베링해를 향하여 흔들리며 나아갔다. 거대한 절벽의 해안선은 검은 침묵으로 말을 아꼈다. 곧 닥쳐올 추위를 미리 대비하는 듯 언덕의 풀포기는 몸을 움츠린 채 미동을 하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해안선을 끼고 계속 위쪽으로 간다면 알래스카에 이르겠구나. 생각은 꼬리를 물고 바다를 헤엄쳐간다. 찰나의 시간 사이로 눈앞을 스쳐 가는 지구본을 팽그르르 돌려본다. 세상이 손바닥만큼 좁게 여겨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눈앞의 대양에 왈칵 무서움이 솟구친다. 떠나 온 해안선은 어느새 윤곽을 감춘다.

 

짙은 잿빛 물길을 알 수 없는 지점을 본다. 물결이 잔잔하다. 물고기가 낚일 것 같다고 여겨지는 지점에 기관실의 승무원이 기관을 끄고 배를 정지시킨다. 배를 파도에 맡겨두고 우리 일행에게 낚시 도구를 챙겨 준다. 배의 기관이 호흡을 정지하니 사위가 고요해졌다.

 

   연을 날릴 때 사용했던 2칸의 얼레에 굵은 낚싯줄을 감고, 추는 큼지막한 볼트, 암나사의 부품을 각각 매달았다. 대양을 노니는 큰 물고기가 잡힐 것을 암시하듯 묵직한 추가 믿음직하다. 미끼로 사용될 생선을 잘게 토막 내왔다. 모두 낚싯바늘에 미끼를 조심스레 끼운다. 호기심과 두려움, 기대로 가득한 얼굴들이다. 갑판이 미끄럽다. 조심하며 암묵 속에 각자의 자리가 정해졌다. 뱃전에 몸을 기댔다.

 

   멀리 낚싯줄을 던졌다. 던진 낚싯줄이 졸래졸래 뱃전으로 다가온다. 가까이 있는 물고기를 우선 잡으라 한다. 눈 아래로 잠수한 낚싯줄에 시선이 멈추어 있다. 긴- 낚싯줄이 다 풀린 뒤에야 다른 사람의 행동을 눈여겨보면서 엄지와 검지 사이로 늘어진 줄을 잡고 슬슬 무게를 가늠해 본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깊어서인지 물빛이 탁하다. 대양을 마주한 가슴은 벅차고 후련하다. 시선을 줄이 드리워져 있는 물속에 고정하고 체제가 다른 극동의 이곳까지 들어 와 낚시를 하는 내가 대견하다.

 

    9월 말 쌀쌀한 바람이 매섭다. 북위 50여 도의 캄차카주 주도州都 페트로파블로프스크만灣을 찾으면서 털모자가 달린 외투와 두터운 모직바지, 동내의를 껴입고 장갑과 목도리까지 중무장인데 몸이 점점 추워진다. 우리를 초대해준 러시아인들은 무스탕에, 오리털 외투까지 껴입었다. 오랫동안 수면을 바라보고 소식을 기다려도 입질이 없다. 다른 위치의 이동을 생각하고 있을 때 멀리서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잡은 고기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며 해안 위쪽을 가리킨다.

 

     바다 가운데 있을 때는 잔잔했던 파도였다. 그러나 해안의 사정은 다르다. 육지에 부딪혀서 되돌아 나오는 파도는 배가된 힘으로 배를 마구 때린다. 심하게 흔들리는 배에서 태연한 표정의 속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만약에, 자꾸 만약에 하며 불가항력의 일이 일어날 것을 주문하는 것처럼 만약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잠식했다.

 

     다시 낚싯줄을 드리운다. 점점 더 추워져 옷깃을 바싹 여밀 때 보드카가 한 순배 돈다. 사양하지 않고 한 모금 입에 털어 넣었다. 입안이 화끈함과 동시에 온몸이 더워진다. 도수 높은 술이 필요한 곳이다.

 

     드디어 환성이 터진다. 월척이다. 대양의 물고기답게 화려하고 큰 놈이다. 선명한 초록 빛깔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머리 부분이 꺽둑어 보다 더 사납게 생긴 것이 성깔 있게 보인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 촬영하는 일행이 부러워 나도 열심히 드리운 줄에 집중한다. 여기저기서 월척들이 막 올라온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히는 인물 좋고 순해 보이는 물고기가 아니다. 물고기도 나름 연고지의 인물들과 편을 먹는다. 장신에다 이목구비 또렷한 러시아인을 닮았다.

 

     눈앞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었다. 어릴 때는 갯가에서 바지락을 잡으며 놀았다. 남의 바지락 밭에 들어가 씨 뿌려 놓은 새끼 바지락까지 훑다가 주인의 고함에 혼비백산하여 친구들과 어디까지 도망갔다. 개펄에서 도망가면서도 뒤돌아보며 소리 질렀다. -이 바다가 니 바다가. 왜 쫒는데 -

 

     물때 맞춰 어른들 틈에 끼어, 앞이 트인 얼기설기한 싸리 소쿠리를 챙겨 들고 배꼽까지 물이 차는 곳으로 들어갔다. 깊숙이 싸리 소쿠리를 발로 밟은 후 떠올리면 개펄에서 아기 주먹만 한 꼬막이 올라왔다. 즐겨 조개를 캐고 고동을 줍고 파래를 뜯어도 나는 반찬이 되어 올라오는 그것들을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갯벌의 지렁이를 징그러워했는데 내가 잡아 온 반찬을 먹으려 하면 개펄에서 꿈틀거리던 갯지렁이가 생각났다.

 

     갯지렁이를 이용해 낚시질하는 사람조차도 징그러워 보여서 피했다. 위험표지판을 무시하고 테트라포드 끝자락에서 하는 곡예 같은 낚시질을 자주 보니 왜 위험하게 저럴까 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곳 러시아의 한 귀퉁이 캄차카반도까지 와서 바다낚시를 하게 되고, 새로운 경험에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를 가졌다.

 

     나도 한 마리 올렸다. 팔꿈치만 한 녀석이 어찌나 힘이 센지 옆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처음 해 본 바다낚시. 끝없이 펼쳐진 베링해를 마주한 채 자연에의 두려움과 경건함으로 가슴은 더없이 충만해 오고 있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