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은 사촌일까 / 청랑
음습하고 한기 서린 지하주차장. 결기가 감돌았다. 아파트 11층에 사는 친구 J는 응원군을 급히 소집했다. J와 J 남편과 아들, 옆집부부, 그리고 9층에 사는 나를 포함해 여섯 명이 모였다.
J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그동안 층간소음으로 아래층과 몇 번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그날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껏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자부하는 그녀에게 날벼락이었다.
이틀 전 아침, J는 수영장에 가려고 나섰다. 엘리베이터는 멈추었고 아래층 남자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위층에 사느냐고 물어왔다. 제발 좀 조용히 살라면서 표정과 말투가 무례했다. 계속 시끄러우면 험한 꼴 당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 안 하면 법으로 할 테다. 말은 격한 감정을 등에 업고 조폭성 욕설까지 해댔다. 순간 층간소음으로 다툼 끝에 저지른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1층에 멈추었고 폭언도 끝났다. 남자는 볼일 끝났다는 듯 앞서 나가버렸다.
처음엔 남편을 채근하며 경비실에 CCTV 녹화를 확인하자 했다. 관리실은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지. 경찰서에 협박죄로 신고하면 어떻겠냐고. 남편이니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잘 대처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남편은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이라 그녀의 제의는 먹혀들지 않았다. 남편만 믿을 수 없게 된 그녀가 응원해줄 지원군을 불렀던 것이다. 일단 10층 남자를 만나 이성적으로 풀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여섯 사람은 시간을 확인하며 출입문 쪽을 주시했다. 8시 30분이 되자 10층 부부가 모습을 보였다. J가 냅다 앞으로 튕겨 나갔다. 몸을 움찔하는 그들 앞에 뒷배를 믿어서일까 꾹꾹 눌러 놓았던 분통을 속사포로 쏟아냈다. 그녀의 아들은 활활 타오르는 엄마에게 품위를 지키자며 제지까지 할 정도였다.
J의 남편은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혹시 불똥이 튈까 두려워 그들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 애썼다. 속으로는 아랫집 남자가 ‘그날은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봅니다.’ 하며 정중히 사과하고 싱겁게 끝나기를 바랐다. 그들은 바로 위아래 층에 사는 이웃이니까.
이번에는 J의 아들과 옆집 부부가 맞섰다.
“당신들 뭐야?”
세 사람을 향해 도전적으로 나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J가 다시 튀어나왔고, 곧 난장판이 될 분위기였다.
아랫집 부부는 그동안의 피해 사례를 조목조목 나열했다. 수험생이 있는데도 배려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손자들이 오는 날이면 골프공이 종일 튕겨 다닌다, 청소기를 일부러 벽에 쾅쾅 부딪친다, 베란다에 걸쳐놓은 이불 위로 물을 쏟아 부었다, 화장실 물소리에 잠을 설친다. 등등…. 오죽했으면 엘리베이터에서 그랬겠냐며 당당했다.
또 다시 J가 말을 받았다.
“당신들 못된 것은 통로 주민들이 다 알아.”
두 아들 혼내는 소리와 잦은 부부싸움으로 욕설과 살림 부서지는 소리에 우리도 시끄럽다고. 주민들 주차 문제로, 텃밭을 가꾸는 일로, 애완견 울음소리와 플루트, 피아노 소리 등, 이런저런 이유로 주민신고를 시도 때도 없이 해서 경비실과 관리사무실에서 골치 아파한다고. 정신이 이상한 당신들이 이 아파트를 떠나야 살맛날 거라면서 신랄하게 맞섰다.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 내가 알던 J가 아니지 싶었다.
화해시키려 했으나 양쪽은 점점 사나워져갔다. 서로 자기주장만 앞세웠다. 언어가 다른 이방인들처럼 전혀 소통이 안 되었다. 갑자기 화살이 J의 남편을 향해 꽂았다.
“이 XX야! 한 달 동안 우리 집 현관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도 용서를 해 줄까 말까야.”
희끗희끗한 J의 남편 위로 폭언이 쏟아졌다.
“당신은 또 뭐야?”
드디어 불똥이 내게 튀었다.
“나, 친군데…요.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이웃끼리.”
겨우 모기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차츰 공격하는 쪽과 수비하는 쪽의 입장이 바뀐 듯 했다. 2 : 6, 아랫집 부부는 정예군이었고 우린 오합지졸이었다. 아래층 남자가 전화기를 꺼냈다. 곧 경찰이 들이닥쳤고 싸움은 휴전되었다.
그 후로 나는 J의 부름을 수시로 받았다. 얼굴이 핼쑥해진 그녀는 식사도 잠도 다 잊어버렸다. 남편과 아들은 다 쓸모없는 인간들이라며 넋두리 했다.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치는 것 밖에 딱히 할 만한 역할도 없었다. 친구로서 의리를 지키고 싶었다고 할까.
J와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지냈다. 같은 통로지만, 맞은편 쪽 그녀의 집은 조망이 훌륭했다. 거기에 세련된 인테리어로 아늑한 보금자리를 꾸미고, 구석구석 정성을 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북한산의 울창한 숲과 위풍당당한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국적인 전망.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 숲속 카페에 온 듯 황홀했다. 이웃들도 그녀의 집을 흠모했고 부러워했다.
어느 날 그녀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옆집에서 자기 집을 사기로 했다며, 그동안 사둔 전원주택으로 곧 이사할 거라고. 갑자기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내 집 마냥 정들었고 그런 조망 좋은 집을 꼭 갖고 싶었는데…. 속이 편치 않았다. 그녀는 늘 다짐하듯 말했었다. 이 집에서 뼈를 묻을 때까지 살다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어디 간들 이렇게 멋진 집을 만날 수 있겠느냐며 뿌듯해하지 않았던가. 배신감마저 들었다. J가 이사를 결정한 사실보다 남의 집이 된다는 것이 더 싫었다.
한치 앞을 못 본다고 했던가. 옆집이 금전적으로 무리여서 계약을 포기했단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가 사든, 전세로 살면 안 되겠냐고.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고마워했다. 아랫집 상황을 다 알면서 이사를 오는 것이 자기네가 도망치듯 가는 것처럼 안 보여 자존심이 덜 상한다고. 그러면서 괜찮겠냐며 걱정했다.
모두 제정신이냐고 했다. 분명 큰일을 당할 거라며 장담하듯 말했다. 성격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미쳤다고 해도, 어리석은 짓이라 해도 난 그 집이 간절했다. 하지만 살던 집이 팔리지 않아 애가 탔다. J의 마음이 바뀔까 봐 수시로 다짐을 받기까지 했다.
결국 염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사하는 날 1차 경고를 받았다. 엘리베이터 안을 더럽히지 않도록 제대로 조치하고 이삿짐 옮기라고. 다음날에는 TV 소리와 라디오 소리가 너무 크니까 자제해 달라고. 베란다 확인을 당장 하라고. 큰소리가 좀 지나쳤나 싶으면 영락없이 부부가 쫓아 올라왔다.
현관 벨과 인터폰 소리만 울려도 화들짝 놀랐다. 수전증 환자처럼 잘 떨어트리는 나는 물건만 들면 긴장되었다. 내 손을 벗어난 물건이 바닥으로 내쳐지는 순간, 험악한 10층 부부 얼굴이 떠올랐다 .
슬리퍼도 털실로 짠 것으로 바꿨다. 세탁기와 청소기는 낮에 돌렸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누가 집으로 온다고 하면 손사래부터 쳤다. 엘리베이터 탈 때면 손전화기를 녹음모드로 해뒀다. 그리고 되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상이 살얼음판 위였다. 그토록 원했던 집이었건만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질책하고 응징했다. 내 신경은 온통 아래층을 감지했고 작은 소리에도 심장은 세차게 펌프질 해댔다.
어느 날 저녁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남자를 만났다. 그동안 서로 시선을 피했기에 당연히 외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새로 이사 오셨는데 찾아뵙고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내 귀를 의심했다. ‘저 남자가 그때 보던 그 사람 맞나?’ 아파트 출입문도 앞서 친절하게 열어주었다. 그의 등 뒤로 공손히 목례를 했다. 그 남자가 딴 사람이 된 듯 보였다.
‘세상에는 인연이 따로 있다’는 부동산 김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그럼 J와 아랫집은 궁합이 맞지 않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어디쯤에서 그들은 어긋난 걸까. 내가 그들에게 한 것은 소음을 줄여보려 애쓴 것뿐이었다. 혹 아랫집 현관에 붙여놓은 ‘이웃으로 잘 지내고 싶다.’는 내용의 간절한 글이 마음에 와 닿은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그토록 원했던 집을 얻었다. 수직으로 2m도 채 안 되는 공간에 더불어 사는 이웃인 그들. 모든 편견을 다 버리고 처음 만나는 인연처럼 진심 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그들도 기꺼이 맞아줄까. 이웃은 참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이다. 이 집으로 이사를 하게 해 준 것도 결국 아래층 부부 때문이 아니던가. 오히려 고마워해야할 사람들이다. J도 다 운명이라며 이 집과의 인연도 이젠 미련 없다며 헐헐 웃었다.
나는 요즘 별장에서 살고 있다. 사계절이 화보 속 풍경처럼 넘실대는 곳이 모두 내 정원이다. 소란한 세상과 달리 평화로운 곳. 새벽, 어둠에 갇혀있는 세상을 본다. 깊은 바다 속 같은 하늘엔 달과 별들이 또렷하다. 엎드려 있는 산의 실루엣은 생각에 따라 여러 가지 사물로 다가오듯이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매일 자연의 위대함을 만나는 시간이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타인의 존재가 내 삶에 어떤 의미일까. 그 남자를 위험한 인물로 단죄한 것은 나였다. 친밀함으로 이웃을 대한다면, 혹 소란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이웃은 분명, 사촌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