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은 있다 / 김성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 표지에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스승은 있다”는 글이 표지에 쓰여 있다. 그런 듯 아닌 듯 모호한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 집어 들었다. 사제관계는 어떤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작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떤 착시나 오해에서 시작된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나만 안다고 생각하는 오해에서 사제관계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배움은 사실 가르치는 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는 자신에 의해 결정된다는 내용이다.
지난 월요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준 사람이다. 필자는 학교생활 중에 ‘스승’이라고 느낀 선생님이 없었다. 공부를 특별히 잘 하지도 않았고 활동적이지도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일부 선생님에게서 트라우마가 된 부당한 일을 두어 번 당해서였다. 그 또한 내 인생이기에 지금은 가슴에 접어두었다. 대학 다닐 때도 교수님들에 대한 존경심은 크진 않았다. 성적은 탑을 유지했지만, 대학은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는 곳이기에 교수님들과는 수업 시간에만 잠깐 보는 사무적 관계일 뿐이었다.
졸업한 지 15년쯤 된 어느 날이었다. 한 커피숍에서 우연히 대학 때 전공과목의 한 교수님을 만났다. 갑자기 마주해 얼굴은 기억났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인사를 드려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웃으며 다가와 먼저 인사를 해오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내 이름은 물론이고 어느 직장에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알고 있었다. 기억 못 할 거란 생각에 인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름은 물론 근황까지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자랑스러운 제자라는 이유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졸업한 지 15년이 지났고 교수님들과 특별히 친하지도 않았는데도 나를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잘 다니는지 묻는 말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라 직장을 그만두려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대학도 직장도 이공계가 적성에 맞지 않아 늘 불만이었다. 문과 출신은 취업 문이 좁아 졸업 후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공계 출신이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전공을 버릴 만큼 구체적인 다른 꿈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나이 또한 마흔을 넘긴 나이였다. 교수님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마흔 아니라 예순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옳다고 했다. 머리가 좋아 어떤 일을 해도 잘할 거라고 듣기 좋은 말씀을 하셨을 땐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인생은 ‘모 아니면 도’라는 이분법이 아니라는 말씀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사회 현실을 들먹이며 퇴사를 만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교수님은 그렇지 않았다.
그랬다. 그 후로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늦은 나이에도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다시 했다. 그것이 문학 공부다. 비록 예전보단 수입은 적지만,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다. 고맙게도 예전 전공인 컴퓨터 능력이 많은 도움을 준다. 컴퓨터 일을 할 때는 주위 대부분이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에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능력보다 훨씬 크게 인정받는다.
생각해 보면 ‘스승’이란 꼭 학교 다닐 때 지식을 가르친 분만이 아니다. 어떤 상황, 어떤 누구에게라도 깨우침을 주었다면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친구와 대화 도중 느낀 것이 있다면 그 친구가 스승이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삶의 모든 것에 스승은 있다는 것이다. 그처럼 스승이란, 내게 새로운 가치를 알게 해준 사람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내게 세상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해준 모든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