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9시, 딸에게서 병원으로 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산예정일이 금요일인데 며칠 앞당겨서 시작한 모양이다.  증세가 새벽 3시부터 나타났다니 아마도 새벽잠을 설치고 갔을 것 같다.

 

분만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오후에 아내와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병원.  12월이지만 햇볕이 내리쪼이는 남가주의 따스한 날씨다.  밤샘을 하고 식사도 못 한 사위가 부탁한 샌드위치를 사 들고 분만실에 도착했다. 산모는 이미 무통 주사를 맞고,  오늘 중으로 출산할 것 같다고 한다.  딸은 매우 힘들어 보였고, 옆에 있는 사위도 피곤해 보였다.

 

LA 북쪽에 사는 시댁 부모가 한참 교통체증이 심한 때에 3시간여의  운전을 하고 저녁 무렵 병원에 도착했다. 분만실로는 오지 않고, 대기실에서 기도만 하고 있다고 사위가 전한다.  조금이라도 며느리가 불편할까 봐 배려해 주는 그 마음이리라. 고맙기만 하다. 담당 의사가 출산을 당기기 위해 양수를 터트려 밤늦게까지는 아이를 낳을 거라 전한다. 시부모들과 병원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9시를 넘긴 시간이고, 10시에는 면회가 끝난다.

 

집에 와서 잠을 청하려니 병원에서 연락이 올 것 같아 뒤척거리다가 아침이 되었다.  새벽 2시 반에 아이를 낳았다는 사위의 연락을 아내가 전한다.  드디어 Suvi가 세상에 나왔다.  딸 먹이려고 미역국을 끓이고 새 밥을 짓느라 아내는 바빠진다.  딸내집의 진돗개 아침과 저녁 먹이를 주고, 밖에 데리고 나가서 볼일 보게 하는 것이 나의 임무다.  지난번 딸네가 서울 갔을 때 해봤던 일이라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녀석이 밖에 나가서 딸 냄새만 찾고 다녀서 문제였다.  아내의 음식 준비가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향했다. 아내는 벌써 아기를 볼 기대로 흥분상태.  

 

아내를 병원에 내려놓고 수요일이면 가는 노인센터를 다니러 갔다.  한번에 2명만 면회하는 제한이 있으니 시댁 부모도 들어가실 기회도 주고해서.  아기가 얌전하다는 아내의 연락이 왔다.  너 꼭 닮은 애가 나올 거라고 딸에게 농담하곤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아기 때 차만 타면 소리 지르고 우는 바람에 어디 가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집에서도 하도 울어 목이 쉬기도 하고.  아뭏든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드디어 아기를 보니 포대기에 싸여서 조용히 자고 있다.  아마도 아빠를 닮은 것 같다. 어릴 때 순하게 컸다고 하니.  산모와 아기가 열이 있었다고, 바로 퇴원은 안 시키고, 좀 지켜본다고 한다.  잘된일이다.  집에 왔다가 저녁에 또 병원으로 향했다.  딸네가 먹을 음식을 싸들고.  병원 음식이 별로 라고한다.  아기는 아직도 얌전히 자고만 있다. 

 

다음 날 아침 연락이 왔다.  아기가 밤새 울어서 한숨도 못 잤다고 한다.  저런. 그동안 어쩐지 이상하더라.  혹시 농담이 씨가 됐나. 공연히 그런 말을 했나 하는 후회가 든다. 아침에 가보니 아기는 또 편히 자고 있다.  완전히 야행성인가 보다. 아내와 딸이 그런 경향이 있는데.  그날 밤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의 사진은 친지들에게 보내졌고, 축하의 인사와 함께 질문도 들어 온다. 몸무게와 키, 얌전하냐 등등. 사람마다 궁금한 것이 다르다는 아내의 반응이었다. 할아버지 클럽에 들어옴을 축하한다는 친구들의 인사가 새삼 느껴진다.  이제 틀림없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얼마전 서울 지하철에서 어느 아주머니가 할아버지 여기 앉으시라고 하길래  주위를 살피며 설마 나는 아니겠지 했는데.  한 친구는 이제 나는 우선순위 3위로 밀린단다.  손주, 자식 그리고 남편.  할배로서는 선배인 그의 말이 맞겠지.

 

한국에도 알렸다.  서울에 계신 장모님의 반응은 "아기가 예쁘다".  광주에 계신 어머니도 보시라고 요양원의 직원분께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어머님이 사진을 보관할 수 있도록  그분이 프린트하고 코팅까지 해서 직접 어머님께 보여드리는 사진을 보내왔다.  주의깊게 보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서 69년 전에 나를 낳으실 때를 기억하시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어느 날 저녁 식사 후에 둥그런 달이 떠 있는 밤에 집에서 낳으셨다고 들었다. 그때 어머님은 만 20살의 어린 나이. 무통 주사도 없던 때이니 몹시 아프셨겠지. 나도 혹시나 야행성이어서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저녁도 아내가 딸네 집에서 돌아와 저녁 차려주기를 기다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꿈이 아직도 야무지나? 자꾸 그 친구의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Suvi야 그래도 이 할아버지는 행복하다.  건강하게 잘 커다오. 밤에는 잠도 잘 자고.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