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도 비가 내렸다. 어제부터 조금씩 비가 내린다.

심란한 마음을 위로라도 하는 듯이 슬픈 표정으로 축축하고 조용하게 내린다.


나는 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를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어린 시절,

비는 나에게 늘 힘든 추억만 안겨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름 장마에 냇물이 불어나 신발을 떠내려 보내고는 일주일 가량 신발없이 학교에

가야했던 추억도 그다지 즐겁지는 않다.

더우기 어느 비오는 날에 아버지가 애지중지 아끼던 검은 천 - 그때는 무척 귀했던 - 

으로 만든 우산을 몰래 들고 나가 자동으로 펼쳐지는 것을 동네 애들에게 자랑하다가

그만 우산 손잡이가 부러지는 사고를 저질렀다.

그리고는 기억하기 싫을 만큼 혼나고 맞았던 적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그뿐인가, 동생하고 같이 신문 배달을 한적이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이었다.

교회 목사님 관사에 신문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비료 포대로 감싼 신문은 조금씩

비에 젖어가고 있어 빨리 배달해야만 했다.

그 관사에는 개가 있었다. 덩치가 아주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검은 개였다.

맑은 날은 그저 대문 밑으로 밀어넣고 오면 됐지만 그날은 비가 와서 안에다 넣어 줘야

했다. 하지만 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섭게 짖어대는 데 아무 기척이 없다.

할 수 없이 나무 사이 비가 덜 내리는 곳에 살짝 얹어 놓고 왔다.

다음날 나는 신문 지국장에게 엄청 혼나고 그날 부로 실직하고 말았던 기억도 난다.


비는 나에게 늘 무언가를 번잡하게 요구한다.

우산을 챙겨야 할지…. 혹시 젖을 만한 것을 가지고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또 그냥 잃어버리고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복장은…, 머리는….,

평소에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자꾸 안겨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내린다.

조용하고 포근하게 비가 내린다.


나이가 든 탓일까...

비가 좋아진다.


세월이 흐르면,

변덕을 부리는 가슴도

어루만져 줄 아량이 생기나보다.

비내리는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에

슬픈 노래를 듣는 것도 

낭만으로 다가와서 좋은 것같다.


시원하게 쏟아지지 않는 봄비는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좋다.

첫눈 처럼 

흥분을 주지 않아도 좋다.

지난 날의

행복했던 사랑의 추억보다

헤어져야 했던 슬픈 추억을

먼저 떠오르게 하더라도

비가 왠지 좋다.


늘 부드럽게 다가오는

봄비이기에 더욱 좋다.


이 비가 지나면

은 연두빛 대지가 푸른 초록색으로

단장하고,

예쁜 꽃이 핀다는

희망이 있어 더욱 좋다.


코로나가 가져다 준 지루할 만치 한가한 일상이 나를 변덕쟁이 로 바꾸어 놓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