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면 그 많은 이들 중에서 유난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1977년 가을이었다. 난 그때 경남 밀양의 육군 보병대대에서 말단 이등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김 하사는 그때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다.
그해 2월 대학을 졸업할 즈음, 동기들은 군 면제를 받는 기관이나 장교시험 등으로 바쁠 때, 그런 혜택에는 관심이 없었던 나였다.
그렇게 해서 5월 말 논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배치된 곳이 밀양이었다. 보병대대에선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 생활의 전부였다. 내무반 생활은 말단 이등병에게 그리 쉽지 않았다. 군기를 잡는다고 취침 중에 밖에 불러내기가 일쑤고, 거기다 대학졸업생이라서 건방지다는 오해도 많이 받고.
내무반의 절반은 단기 하사관들이었는데 일반 사병과 똑같이 입대 후에 하사관 학교로 차출되어 교육받고 하사로 상급자 대우를 받게 된다. 이러니 고참 사병들과 신참 하사관 사이에 알력이 있게 마련이다. 김 하사는 단기 하사 중에서도 고참이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유난히 강했고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것으로 기억된다.
기다리던 외출이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입대 후 처음으로 군 밖으로 나가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대대에서 몇몇이 같이 나가게 됐는데 그중에 김 하사도 있었다. 어디로 특별히 갈 곳도 없는데, 김 하사가 같이 가자고 한다. 영남루라고 기억된다. 호수에 있는 누각이었다. 짧은 하루가 저물어 가고 같이 식사를 하다 술을 들게 되었는데 그만 도를 넘기고 말았다. 부대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길옆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내무반에 들어오긴 했는데, 아마도 김 하사가 애먹었을 것 같다. 한쪽 구석에 뉘어놓고 하루 끝날 때 받는 일석 점호 시간이 되었다. 담요를 덮어쓰고 누워 있는데 점호 담당관의 묻는 말에, 아파서 누워있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아직 술이 깬 상태는 아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이 걱정되었다. 말단 이등병이 첫 외출에 술에 취해 하사와 같이 왔으니.
다행히도 지금 생각에 아주 심한 처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될 뿐, 어떻게 해서 봐주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김 하사가 마무리해 주지 않았나 한다. 왠지 당연히 그럴 사람 같고. 항상 군인이 아닌 친구로 대해줬으니까.
다음 해 봄에 나와 동료 하나는 사단으로 차출되어갔다. 대졸 자라는 이유에서. 그래서 김 하사와의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가끔 군대 생활을 뒤돌아보면 김 하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김 종국이란 어렴풋한 기억과 함께.
안녕하세요?
요즘은 작품을 올리시지 않아서
안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