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동안 날씨가 좋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기분이 울적한데, 날씨까지 비가 조금씩 내리면서 흐린 날씨가 계속되니
무척 견디기가 힘들다. 식당과 카페등을 비롯해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은 모두 닫혀있어
집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갇혀있는 듯한 기분에 짜증이 심하다.
오늘은 그래도 가려진 하늘이 이따금씩 보이며 조금은 따뜻해졌다.
아침 일찍이 병원에 가기위해 채비를 한다.
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늘 먹는 콜레스테롤 약을 리필하기 위해서다.
병원 가는 길에 벚꽃이 절반쯤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엇~ 봄이구나!'
여기 캘리포니아에 온 뒤로는 사계절을 달력에 표시하며 억지로 구분해 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겨울이 왔다 가고 봄이 오는 것을 알았던 나는
낯선 계절의 변화때문에 아예 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봄을 느끼며 기분이 좋아질 무렵 차가 병원 주차장에 들어섰다.
운전하는 딸아이가 마스크를 건넨다.
나는 어색했다. "잠시 약만 받아서 오면 되는데..."
띨의 인상이 찌그러 든다. "받아... 아빠 위해서 주는 거 아니야, 우리 가족을 위해서 주는 거야.
아빠가 가장 위험한 전염 대상이잖아...." 코로나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더 위험하단다.
요즘에는 일상이 전쟁 속에서 진행되는 것같다.
문득 얼마전에 봤던 '부산행'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부산행 열차 속에서 무명의 바이러스에 오염된 좀비들과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과 지켜야 하는 가족을 위해
싸우는 광경을 묘사한 영화로 기억된다.
그런 장르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저 재미없이 보고 말았던 영화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그 영화가 생각이 난 것이다.
병원에서 본 풍경 때문 일 것이다.
보통은 주차할 곳을 찾기위해 몇 바퀴를 돌아야 했던 주차장이 텅비어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내리는 사람들은 모두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있다.
눈도 마추치지 않고 지나친다.
출입문에는 마스크를 쓰고 시큐리티 복장을 한 사람이 '왜 왔냐?'는 듯 노려본다.
원래 소심한 나는 죄인인 양, 고개 푹 숙이고 병원 내에 있는 약국으로 숨어 들어갔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오염 안된 새로운 먹이감을 보듯 나를 일제히 노려본다.
나도 마스크를 쓴 너의 동족이라는 신호로 눈 인사를 건네고, 약을 신청하고 나서 구석의 소파에 몸을 구겨 앉혔다.
내 이름을 부른다.
사형대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놀라 일어나 약을 두손으로 받아든다.
뭐라고 설명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고맙다고 고개만 끄떡이고 도망치 듯 나왔다.
차에서 손세정제를 주며 웃는 딸아이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굳어져 있는 표정이 이상했나 보다.
"뭐가? 그냥 빨리 집에나 가자." 돌아 올 때 벚꽃을 자세히 봐야지 하고 마음 먹었던 걸 까맣게 잊고
집에 들어섰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다시 밖은 따뜻한 햇빛이 반짝거린다.
닫혀진 좁은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그리운 자유를 외쳐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갇혀 있는 우리 모두를 좀비로 만들어 가고 있지는 않을까 괜한 염려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