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 이야기 할 때 궁금한 것이 몇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종교 일 것이다.

낯선 사람끼리 만나 동질성을 찾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신앙고백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의 종교와 신앙을 존중하며, 반론을 가지고 있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에 미리 불편한 점이 있으면 사과를 드립니다. 더구나 협회의 룰을 위반한 글 이면 바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교회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크리스마스때 과자와 빵을 주는 곳이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는 크리스마스때 연극도하고, 암송 발표하면서

자신을 나타내는 재미있는 놀이 공간이었다.

중학교때는 그저 일요일에 일하기 싫어 핑계대는 곳이었으며,

고등학교때는 여학생들과 부끄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이상은 아니었다.

철이 들면서 알렐루야라는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모든 문제를 하느님과 예수님께 의지하는 비겁한 젊은이의 마음 가짐이 싫었다.

조금더 나이가 들면서는 너도 예수쟁이냐라는 말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날 핑계를 찾았다.

마침 친구가 여호와 증인인 부모밑에서 자라나 학교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못함을 창피하게

여기고 있어, 함께 교회로부터 멀리 도망갔다.

한동안 너무나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게 내 잘난 맛으로 되어가는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침을 내 뱉고, 주먹질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아내될 사람은 카톨릭 신자였다.

그래서 신부님앞에 나가 신자가 될 것을 약속하고 결혼 승락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에 왔다.

미국에서 내 차로 한국에서 다녔던 직장 후배 부부, 그의 아들, 딸, 그리고 나 다섯이 미시간의 트레버스 시티라는 곳에 놀러 갔다 오다가, 차가 영화 속의 장면 처럼 거꾸로 뒤집히면서 뒹구는 큰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차만 폐차되고 누구 하나도 다친데 없이 살아난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를 목격한 동네 사람들과 의사의 표현으로는, 자기네들 마을이 생긴이래 가장 큰 사고였으며, 기적을 목격한 사고였단다.그후 나는 부끄럼없이 고해성사하면서 신자라고 말하는 정도가 되었다.


어느 과학자는 말한다. ‘신은 없다.’ ‘성경에 나오는이야기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혹자는 ‘보이지 않는 신을 믿을 수 있느냐?’ 하면서 신의 존재를 증명해보라고 한다.

그들은 왜 신의 형상을 따지는 걸까? 보이면 정말 믿겠다는 걸까?

또 다른 모습의 신을 상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옳은 예가 될 지 모르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을 닮고 그를 따라하고 싶어진다.

성경 말씀이 곧 하느님이다. 그게 답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말씀을 통하여 볼 수가 있다. 

그럼 믿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사건과 상황을 우연과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나는 과학적으로 그 큰 사고 때 분명 죽었어야 한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살았다.

그렇다면, 증명된 과학에도 예외가 너무 많이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가 신의 영역을 감히 인간의 한계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말 할 수 없는 것과의 이런 대면이 바로 ‘숭고함(sublime)’이다.숭고함의 라틴어 어원은 ‘한계를 대면한다’는 뜻이다. 숭고함은 너무 크고, 너무 광대하고, 너무 어둡고 신비로워서 우리가 말이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린은 그 숭고함을 죽음이라고 했지만, 그게 신앙과 연결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것이지 아닐까?


얼마전 과학 뉴스에 수백억 광년을 달려 와서 지구에 도착한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우주를 창조한 하느님의 눈에는 그 수백억 광년이 오른쪽 눈에서 왼쪽 눈의 거리 일 뿐이다.

그게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니 그렇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무사했음을 감사드린다.


오늘도 감사의 묵주 기도를 드리면서 잠시 묵상에 젖어 보았다. 누군가에게 누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누구나 한번 쯤 생각했을 법한 이야기라고 자위하며 용기를 내서 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