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할머니를 만난 것은 아무리 봐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 만남은 나를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몇 달 전 근처 노인센터 컴퓨터실에서 봉사를 시작한 날에 그 할머니도 컴퓨터를 처음 사용하러 왔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으니, 자신의 이멜을 같이 보자고 한다. 아직 안 읽은 이멜이 몇백 개가 된다.

 

70대 중반으로 딸네 집 근처에서 혼자 사신다. 건강이 안 좋아서 고생하셨다고 한다. 미국 생활도 꽤 많이 하셨고, 형제분들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

 

처음에는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나곤 했으나 차츰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어온다.  아니 이렇게 해서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 수 있나 하는 염려가 된다.

 

처음 만나는 날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시길래 무심코 줬는데, 가끔 전화도 해서 묻기도 한다. 차츰 내가 잘못 처신을 했나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책을 통하거나 영화로 볼 때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 특히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을 때, 미덕이라 여겨왔고, 종종 그런 일에 부딪힐 때 나 자신이 잘했다고 여겨왔다.

 

K 할머니와의 만남이 반복되면서, 남을 돕는 나의 마음 자세가 아직도 멀었다는 실망감을 느낀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리셨다고 하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씀이 떠올랐다.  만약 K 할머니가 젊고 예쁜 여자였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니 더욱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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