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는다.

똑같은 그자리다.

어제 마셨던 못생긴 머그잔에

내가 탄 일회용 커피믹스가 

익숙한 향기를 풍긴다.


매일 보는 손님이 묻는다.

“무슨 낙으로 사세요?”

매일 시계추처럼 집과 가게를 오가는 내가 

몹시 안쓰러운 모양이다.


대답을 할 수 없어 웃고 만다.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 왔을 뿐이다.


이민 생활이 그랬다.

나도 한때는 멋지게 한번 살아보겠다는 꿈이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커피가 식었다.

뜨거운 커피가 좋은데.....

다시 끓이기위해 일어섰다.

문득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슬픔이 밀려오는 듯한 느낌이다.


여지껏 그냥  잘 살아온 인생인데...

아직도 그냥 잘 살아야 할 인생인데...

왜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는지 모르겠다.

지난 일들이 부서진 조그만 조각들로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잠시 울다가 웃었다.

시간을 따라 흘러왔을 뿐인데...

누군가 연극의 제목처럼 ‘인생’이라고

붙여 놓은 삶 이라서   

어느 유명한 배우처럼 화려하고 멋드러지게

한번 살아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제는 깜빡 잊었던

아주 친한 대학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안부 전하지 못해서 미안하단다.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대수술을 했단다.

지금 회복중이라 조금 시간이 나서,

아니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단다.


내가 더 미안했다.

안부는 내가 물었어야 했던거다.


별거 아닌 인생을 살면서

무얼 찾아 그리도 열심히 뛰었는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다행히 큰 일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건강이 최고란다.

모든걸 한순간에 다 잃을 뻔 했단다.


그런가보다.

그저 건강하게 살면 되는거다.

무엇을... 어떻게... 왜...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

어제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았고,

내일도 오늘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

그냥

그게 나의 사는 낙이라고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