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여러 곳에 자원봉사 지원을 했다. 그중에서 먼저 회신이 온 곳은 취약자들에게 무료 세금 보고를 해주는 일이었다. AARP라는 은퇴자협회가 IRS와 함께 하는 것으로 일주일 교육 후에 간단한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쳤다. 팬데믹이 마지막 극성인 시기에 열댓 명이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약간은 부담도 되었고, 한 해에 한번 직접 내 세금 보고하던 정도의 지식으론 벅차다는 생각도 들어 중도에 그만둘 생각도 해봤지만, 다행히 시험에 합격하니 용기도 나서 발을 더 내디뎠다.
2월부터 4월 납세 마감일 전까지 일주일에 하루, 동네 노인 센터에 나가서 6시간 정도 세금 보고를 해주는 일이었다. 납세자와 면담을 한 후에 computer program에 자료를 입력하는 일로 하루에 4~6명 정도를 할 수 있었다. 대부분 간단한 내용으로 가끔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는 것이 재미로운 부분이었다. 노인 센터에서 나오는 무료 점심도 괜찮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함께하는 즐거움도 있었고. 몇 명은 지난 수년간 봉사를 해온 이들로 진지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하루지만 예전처럼 출퇴근하는 것이 좋기도 했다. 집사람이 나보다 더 좋아하는 듯도 했지만.
하루는 한국전 휴전 직후에 의정부에서 근무했다는 미군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때쯤 태어난 한국 아이가 당시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를 미국에서 만나는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그분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돌린다는 보람도 느꼈다. 다행히 그분은 아직 운전도 하시고 건강해 보였다.
어떤 할머니는 집에서 만든 쿠키를 한 접시 들고 와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세금 보고를 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은 왜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도 하고. 그런가 하면, 왜 빨리 일을 서두르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재촉하는 이도 있고. 세금을 내게 되면 전에는 한 번도 낸 적이 없었는데 잘못했다며 불평을 하는 이도 있고. 그럴 때면 내가 혹시 실수를 했나 하는 염려로 다시 검토하지만 부족한 내 경험 탓일까 봐 공연히 발이 저렸다.
이런저런 노인들을 만나며, 노후의 모습이 참으로 다양하단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염려와 함께, 내년에도 할까 말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래도 또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4-20-2022 Tustin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