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촌놈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기차를 구경하기 위해 초등학교 졸업 기념으로 임실에 살고 계시던 이모집에 가야했던 그런 촌놈이다.
그것도 '무진장 촌놈'이다.
이것은 내가 붙인 별명이 아니다. 대학교 다닐 때까지 서울 밖으로 떠나 본 적이 없고, 시골에 사는 친구는 나 하나 뿐이라던 어느 서울 녀석이 붙여준 별명이다.
무진장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다함이 없이 많음'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별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전북 장수 장계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무주, 진안, 장수가 하나의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였다.그래서 내가 태어난 고장을 '무진장'이라 불렀다.
또한 그곳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낙후된 시골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무주 구천동이 자리한 덕유산 끝자락이 우리 지역까지 연결되는 곳이다.
지금도 처가집 식구들은, 어릴 때 말 안듣고 말썽부리면 '너 구천동으로 시집 보낸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에 그곳은 사람이 살지 못할 깊은 산골이라 생각하며, 나는 아내 덕에 구천동 - 내 고향에서는 한 참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 에서 미국 대통령이 살고있는 워싱턴 디시 지역까지 진출하였으니, 소위 출세한 인물이라고 놀린다.
지리적으로는 육십령이라는 재 하나만 넘어가면 바로 경상남도와 연결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때 왜나라 장수를 안고 강물에 몸을 던진 '논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또한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이토록 자랑스럽게 내가 태어난 곳을 설명해도 그 친구는 그저 웃기만 했다.
단지 내가 그곳에서 태어나서 붙인 별명이 아니라면서 말이다.
나에게선 지울 수 없는 촌티가 너무 나서 붙인 것이란다.
그럴만도 하다.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으니, 내 몸에서 촌티가 나지 않았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몇년전 서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딸아이가 미시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SK 텔레콤 서울 본사에서 근무할 때이다.
미국식 브런치를 대접하겠다며 미국 문화가 가장 많이 풍기는 이태원의 어느 유명한 브런치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내가 딸아이 자신 처럼 미국식에 익숙해 있을 걸로 생각한 것이다.
주문은 자기가 알아서 할테니 마실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모르는 식당에 가면 무조건 커피다. 아는게 그것 말고는 거의 없다.
그런데 커피 메뉴가 너무 다양했다.
아메리카노와 카푸치노 정도는 알겠는데, 그 밖에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이름들이 많았다.
아메리카노는 너무 익숙해서 멋을 좀 내보려고 다른 것을 시켰다.
어디서 들어 본듯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간장 종지만한 작은 잔에 한모금 정도의 커피를 내려 놓고 갔다.
딸아이가 마셔 보라는 눈 짓을 한다. 나는 속으로 '역시 인심 좋은 한국은 다르구나. 자기 식당의 커피를 시음해 보라고 맛보기로 조금 주나보다.'하고 생각하며 홀짝 마셨다.
향기가 온몸에 쫙 퍼지는 듯한 짜릿함으로 쓰다는 생각을 잊었다.
"와! 우리 아빠 세련 됐는데......" 나는 슬쩍 미소를 던졌다.
그리고는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나는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왜 안드세요?"
"응, 커피나오면 같이 먹을려고......"
"아빠! 조금전에 드셨잖아요?"
"그거 시음하라고 준거 아니야? 한모금 밖에 없었는데......"
"......???"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야."
나는 완전히 촌놈이 되었다. 딸의 실망한 표정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했다.
며칠 전에 나를 촌놈이라고 별명 붙여준 친구한테서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그 동안 내가 걱정할까봐 말을 안했는데, 얼마전에 폐암 2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단다.
수술은 잘 끝났고 지금 항암치료 중인데 이제 마지막 한번 남았단다.
이번 코로나가 지나가고 자신의 항암치료가 끝나면 한국에 나와서 같이 좀 지내다 가라고 연락했단다.
늦게 골프를 배웠는데, 같이 치면서 놀다가 시골 여기저기 돌아 다녀 보잔다.
이제는 자기가 촌놈이 되려고 굳게 마음 먹었단다.
그래서 생각난 사람이 바로 나고 진짜 촌놈이 보고싶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