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이 왔다.
코로나가 모두를 집에 감금을 시키고, 일상을 묶어 놓았지만 세월은 잡을 수 없었나보다.
예년처럼 어김없이 오월은 찾아왔다.
고향이 있는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휴일이 겹쳐 모처럼 맞이한 황금 연휴에 코로나는 아랑곳 없이
나들이 준비에 들떠있는 모습이다.
기억해야 할 일은 잊어야 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은 유독 요란을 떨어대는 인터넷 기사 때문일까?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사월이 훌쩍 가버렸다.
멀리 떨어져 살면 이제 무감각해 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고국 소식에 열을 내냐며 혀를 차는 아내의
투정에 대꾸할 틈도 없이 꽃피는 사월이 그냥 그렇게 떠나갔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그만이지 제비꽃이 핌 으로써 봄의 들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건 제비꽃으로선 알바가 아니라네."
법정스님이 쓴 '서있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어느 수학자의 그 말처럼,
'하루를 살면 그만이지 사월이 나에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하고 위로를 해보지만
올해는 떠나간 사월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진다.
주로 집안에 갇혀 지내면서 봄을 느끼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봄꽃을 무척 좋아했던 나는 지난 날의 추억이 사월에 몰려있어서 그런가 보다.
뒷동산이 온통 진달래꽃으로 덮여 있을 때는 꽃잎을 따먹기 위해 학교도 가지 않고 뛰어 놀다가 문둥이에게
잡혀 간다는 소리에 놀라 산에서 숨지 못하고 울면서 집에 들어가 어머니한테 혼난 어릴 적 추억도 사월이었으리라.
모여 있어야 아름다운 개나리꽃과 도도하게 혼자 피어 뽐내야 제 멋인 목련의 조화가 나의 고향집 봄의 사월 풍경화이다.
오월은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어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미국에 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같은 의미의 달이다.
재작년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는 그래도 고향에 전화라도 하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오월은 푸르구나... 하며, 우리들 세상을 마음껏 외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초노의 서글픔으로 뒤바뀐 세월이 외로움을 더한다.
그렇다고,이대로 가는 세월을 한탄만하고 있을 수는 없다.
어느 이름 모를 여대생이 지었다는 시가 말해주 듯,
'만일 단지 짧은 기간 동안 살아야 한다면
이 생에서 내가 사랑한 모든 사람들을 찾아 보리라.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확실히 말하리라.
덜 후회하고 더 행동하리라.
또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두 불러 봐야지.
아, 나는 춤을 추리라.
나는 밤새도록 춤을 추리라.
.......'

나도 다시 푸른 오월을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