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비드가 막 세계를 뒤덮기 시작하는 때였다. 2020년 봄. 집에서 직장 일을 하고 시장, 병원, 약국들을 제외하곤 모두 문을 닫고 식당도 takeout만 했다.  근처 공원이나 바닷가도 출입 금지로 집에 꼭 갇혀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안사람은 서울 친정아버님이 편찮으셔서 뵈러 갔으니 혼자서 몇 달을 집에서 지내게 됐다. 저녁 식사 후에 YouTube에서 우연히 노래방 영상을 보게 됐고 가요무대에 나오는 노래들을 불러보게 됐다. “애수의 소야곡”, “선창” 등 일제 강점기 시절의 애절한 노래가 왠지 가슴에 닿아왔다.  이렇게 저녁에는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마감하는 재미로 혼자 있는 생활에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러다가 내 노래를 노래방 영상에 덧붙여 녹음해서 YouTube에 되올리게까지 되었다. 그러고는 친지들에게 알리고. 한 곡 두 곡 늘어나는 재미로. 그러다 보니 내가 올린 영상의 조회수에 관심이 가고 슬그머니 욕심도 생기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가끔 예의로 건네는 칭찬에 눈이 멀어져, 이렇게 하다가 뭐가 될 것 같은 망상에도 빠져, 연습도 별로 안 하고 녹음부터 하게 되고.

 

녹음 후엔 안사람에게 보내서 반응을 보기도 하는데,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곤 했으니 음정이며 박자가 어떻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칭찬보다는 부족한 부분의 지적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 날은 뒷집에 사는 Jack이 지나가며 노래 잘 듣고 있다고 한다.  뒷집이란 이유로 여름날 저녁 열린 창문으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안 들을 수가 없었겠지. 대부분 이해가 안 되는 외국가사지만 가끔 미국노래가 나오니 그나마.

 

이렇게 일 년이 넘어서 올린 영상이 몇십 개가 되어 갈 때, 내가 허황한 기대감에 빠져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런 내가 어리석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올린 영상들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다 지워버리고 나니 가벼운 해방감이 들었다.

 

요즈음도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다. 혼자 도취할 때가 많고, 혹시 뒷집 Jack이 듣고 있나 하는 기대도 하면서.  연습이 잘 되었다 싶으면 녹음해서 휴대전화에 저장, 운전하면서 함께 부른다. 가끔은 친지들에게 그 파일을 보내곤,  혹시나 칭찬해 주지 않나 하는 욕심도 부려보면서.

 

아마도 노래를 부르는 한에는 내려놓기 힘든 기대 같다. 그래도 목소리가 나오는 한은 불러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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