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보편자, 잠재태, 현실태, 형상, 질료

19.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17세기가 시작된 이래 지성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거의 모든 사상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트라키아의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부친은 마케도니아 왕의 가족 시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18세에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으며 20년 동안 아카데메이아에 머물렀다. 한동안 여행을 했으며 헤르미아스라는 참주의 여동생이나 조카와 결혼했다.

그는 기원전 343년 당시 13세였던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필리포스 국왕이 16세의 알렉산드로스를 청년이라 선언하고 나라를 비운 동안 자신을 대신하여 통치할 섭정으로 지명할 때까지 가르쳤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는 모두 확인할 길이 없으며 이를 둘러싼 풍문이 더 많이 떠돌아 전설처럼 전해졌다.

기원전 335년부터 323년까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살았다. 12년 동안 리케이온 학원을 세우고 거기서 책을 썼다.

그는 철학자로서 여러 가지 점에서 선대 철학자들과 달랐다. 오늘날의 교수처럼 글을 썼다. 그가 쓴 논문은 체계를 갖추어 토론 내용이 항목별로 분류되었다. 그는 영감을 받은 예언자가 아니라 전문 교사다. 그의 저작은 비판하는 내용이 많으며 주도면밀하고 산문체로 쓰여 있어 바쿠스풍 열광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론에 반대한 매우 뛰어나 논증을 내놓는데 대부분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나와 있다. 가장 강력한 논증은 ‘제3인간’이다, 만일 어떤 인간이 이상적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일상적 인간과 이상적 인간을 유사하게 만든 한층 더 이상적인 인간이 존재해야 한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면서 동물이고 이상적 인간이 이상적 동물이냐는 문제가 발생한다. 만일 이상적 인간이 이상적 동물이라면 동물 종만큼 많은 이상적 동물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상식으로 희석된 플라톤 사상이라고 평할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개별 사물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본질적 특성) 이론과 질료·형상 이론을 다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의 절반을 차지하는 상식적 학설을 설명한 다음에 그가 상식적 학설을 플라톤식으로 수정한 내용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다.

보편자 이론은 특정 지점까지 아주 간단하다. 언어에는 고유명사와 형용사가 있다. 고유명사는 ‘사물들’이나 ‘사람들’에 적용되며 해당 고유명사가 적용되는 사물이나 사람은 하나뿐이다. 태양, 달, 프랑스, 나폴레옹은 각각 유일한 사물이다. 그러니까 고유명사에 해당하는 이름을 적용할 사물은 여럿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한편 고양이, 개, 인간 같은 낱말은 상이한 여러 사물에 적용된다. 보편자 문제는 이러한 일반명사와 하얗다, 딱딱하다, 둥글다, 같은 형용사의 의미와 관계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는 여러 주어의 술어가 되는 본성이 있음을 뜻하는 용어이고 ‘개체’는 그렇게 술어가 되지 않음을 뜻하는 용어다”라고 말한다.

고유명사가 나타내는 것은 ‘실체’인 반면 ‘인간이다’나 ‘인간’ 같은 형용사나 집합명사가 나타내는 것은 ‘보편자’라고 부른다. 실체는 ‘이것’이지만 보편자는 ‘이러함’에 해당하므로 실제 특수 사물이 아니라 사물의 종류를 가리킨다. 보편자는 ‘이것’이 아니기에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편자는 홀로 실존할 수 없고 오로지 개별 사물들 속에 실존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보편자 이론은 플라톤의 이상론에서 한 단계 진보한 것이고 철학의 진정한 문제를 다룬 매우 중요한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점인 ‘형상’과 ‘질료’는 가벼운 상식으로 접근한다. 대리석 조각상을 사례로 들자면 대리석은 질료지만 조각가가 틀을 잡은 모양은 형상이다. 어떤 사람이 청동제 공을 만든다면 청동은 질료이고 둥근 모양은 형상이다. 바다의 경우 바닷물은 질료지만 잔잔함은 형상이다. 질료는 형상의 효력으로 어떤 한정된 사물이 되기 때문에 형상이 사물의 실체라고 말한다. ‘사물’은 한계가 정해져야 하고 그러한 한계가 바로 사물의 형상을 구성한다는 말이다.

어떤 사물의 형상은 그것의 본질이자 제일 실체다. 형상은 실체지만 보편자는 실체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놋쇠 공을 만들 때 질료와 형상은 둘 다 이미 실존하고 있었고 해야 할 일은 질료와 형상을 결합하는 것뿐이다. 사물들은 형상을 획득함으로써 실제로 구현된 현실성이 증가한다. 말하자면 형상이 없는 질료는 잠재태일 따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 이론은 잠재태(역량)와 현실태(능력)의 구별과 관계가 있다. 맨질료는 형상의 잠재성이다. 그러니까 모든 변화를 겪은 다음 해당 사물이 이전보다 더 많은 형상을 지닌다는 점에서 ‘진화’라고 부를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은 흥미롭고 형이상학의 나머지 부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신학’은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부르는 이름이다. 그는 세 종류의 실체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감각되고 소멸하는 실체와 감각되지만 소멸하지 않는 실체, 감각되지도 소멸하지도 않는 실체다. 첫째는 식물과 동물, 둘째는 천체, 셋째는 인간의 이성혼를 비롯한 신이 포함된다.

영혼은 이성적 요소와 비이성적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비이성적 요소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서, 심지어 식물에서도 발견되는 생장하는 부분과 모든 동물에게 있는 욕구하는 부분이다. 이성혼의 삶은 관조하는 데 있으며 관조는 충분히 도달하기 힘들지만, 인간이 완전히 행복한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가르치고 나중에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친 개인의 영혼 불멸을 믿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인간이 이성을 지니는 한 불멸하는 신성에 참여한다고 믿었을 따름이다. 자신의 본성 속에 깃들인 신성한 요소를 늘리는 일은 인간에게 열려 있으며 신성한 요소의 증대가 바로 최고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20.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가 윤리학에서 제시한 견해는 주로 당시 교양 있고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널리 보급된 의견을 대표한다.

선은 행복이며 행복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영혼을 이성적 부분과 비이성적 부분으로 나눈 점에서 옳다고 말한다. 그는 비이성적 부분을 생장과 욕구로 나눈다. 욕구는 추구하는 선이, 예컨대 이성이 허용하는 경우에 어느 정도 이성적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덕에는 영혼의 두 부분에 상응하는 지적인 덕과 윤리적 덕이 있다. 지적인 덕은 가르쳐서 얻고, 윤리적 덕은 습관을 키워서 얻는다. 시민들이 좋은 습관을 길러서 선량해지도록 만드는 일은 입법자의 직무다. 우리는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정의로워지며 다른 덕들도 행동함으로써 얻는다.

모든 덕은 각각 양극단의 중용이며 양극은 각각 악습에 속한다. 이 학설은 갖가지 덕을 검토한 끝에 입증된다. 용기는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다. 후함은 방탕과 인색함의 중용이며, 적당한 긍지는 허영과 비굴의 중용이고, 빠른 기지는 익살과 상스러움의 중용이며, 겸손은 수줍음과 파렴치함의 중용이다. 그러나 어떤 덕은 양극의 중용이라는 도식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데 예컨대 진실성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가장 훌륭한 개인은 그리스도교의 성인과 아주 다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적당한 긍지를 지녀야 하며 자신의 공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도 안 된다. 또 경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든지 경멸해야 한다. 긍지에 찬 또는 대범한 사람에 대한 서술은 이교도 윤리와 그리스도교 윤리의 차이, 니체가 그리스도교를 노예 도덕으로 평가한 의미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스토아 철학자와 초기 그리스도교는 최고선이며 외부 상황이 덕을 실현하려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회에 상존하는 불의는 그저 하찮은 문제에 영향을 끼칠 뿐이므로 정의로운 사회 체제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반대로 민주주의자는 으레 적어도 정치 상황과 연관되는 한에서 가장 중요한 선은 권력과 재산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자는 권력이나 재산에 관한 불의를 초래한 사회 체제를 묵인할 수 없다.

최고 덕이 소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윤리학을 정치학에 논리적으로 종속시키는 문제와 관계가 있다. 윤리학의 목표가 선한 개인이 아니라 선한 사회라면 선한 사회는 종속관계를 포함하는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 교리가 미친 영향의 결과로 도덕적 장점과 다른 장점은 그리스 시대보다 훨씬 선명하게 구별되었다. 위대한 시인이나 위대한 작곡가나 위대한 화가에게 어떤 장점이 있겠지만 그것은 도덕적 장점이 아니다. 도덕적 장점은 오로지 의지 활동, 말하자면 가능한 행동 방향 가운데 올바르게 선택하는 활동과 관련될 따름이다.

덕은 주로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죄를 피하는 데서 얻는다. 교육받은 사람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보다 또는 총명한 사람이 우매한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지닌 수많은 장점은 윤리학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비윤리적이다’라는 형용사는 현대의 용법에 따르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형용사보다 적용 범위가 훨씬 더 좁다.

윤리 이론은 덕을 목적으로 보느냐 수단으로 보느냐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목적, 말하자면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관점을 받아들인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적지 않은 부분이 우정에 대한 논의로 채워지며 애정 관계를 모두 망라한다. 완벽한 우정은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며 여러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 누구든 자신이 받은 존경의 정당성을 입증해 주는 고결한 덕을 갖추지 않았다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과 친구가 되지 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모든 점에서 자신의 형이상학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형이상학 이론은 윤리적 낙관론을 표현한다. 그는 목적인이 과학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이것은 목적이 우주의 발전 과정을 지배한다는 믿음을 함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는 자비나 박애라고 부를 만한 요소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인류가 겪는 여러 가지 고통을 의식하더라도 그의 감정에는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초기 철학자들에게 발견되지 않는 정서적 빈곤을 드러낸다. 그의 주장은 열정 없이 안락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견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명성이 높은데도 본질적으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빠뜨렸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귀족정치, 이상국가

21.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당시 교육받은 그리스인의 공통된 편견을 보여 주기 때문에 중세 말기까지 영향을 미친 여러 원리의 근원이 되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정치학』의 전체 논의는 도시국가와 관련이 있으나 도시국가의 쇠퇴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들어나지는 않는다. 그리스는 독립된 도시들로 분할된 탓에 정치실험을 하는 실험장이었다.

정치학은 국가의 중요한 가치를 지적하며 시작한다. 국가는 최고 단계에 이른 공동체로서 최고선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시간 순서로 보면 가족이 처음에 생기는데 가족은 근본적으로 두 관계, 곧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형성되고 둘 다 본성에 따라 정해진다. 가족이 몇 가구 결합하면 마을이 생긴다. 마을이 몇 개 모여 자족할 만큼 충분히 커지면 국가가 형성된다. 국가는 시간 순서로 가족보다 나중에 형성되지만, 본성의 측면에서 가족에 우선하고 심지어 개인보다 우선한다. 우리는 각 사물이 충분히 발전했을 때 갖는 성질을 그 사물의 본성이라 부르고 충분히 발전한 인간사회가 국가이며 국가 전체는 부분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계가 깊은 건 유기체 개념이다. 국가를 이루는 각 세대는 한 가족으로 구성되기에 정치학의 논의는 가족에서 시작된다.

스콜라 철학의 결의론에 영향을 미친 장사에 대한 논의를 보자. 사물의 쓰임은 두 가지로 하나는 적합한 쓰임이고 하나는 부적합한 쓰임이다. 예를 들어 신발을 신어 닳게 되면 적합한 쓰임이고 팔리게 되면 부적합하게 쓰인 것이다. 부를 얻는 자연스러운 방법은 집과 토지를 요령껏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얻게 되는 부에는 한계가 있지만, 장사로 얻게 되는 부에는 한계가 없다. 부를 얻는 모든 방법 가운데 고리대금이 제일 부자연스럽다. 고리대금에 반대한 중세 철학자들의 입장은 반유대주의로 강화되는데 유동성 자금 대부분을 유대인이 소유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근거를 들어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비판한다. 가장 흥미로운 논평은 플라톤의 이론이 국가에 대해 지나치게 통일성을 부여한 나머지 국가를 개체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정치체제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목표로 삼으면 좋은 정치이고 정치체제 자체만 돌본다면 나쁜 것이다. 좋은 정치체제에 속한 세 가지는 군주정치, 귀족정치, 입헌정치다. 나쁜 정치 형태는 참주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 학설에서 적당히 충분한 수입이 덕과 가장 잘 결합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정치와 민주정치의 차이가 집권당의 경제적 지위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부유층이 빈곤층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하면 과두정치가 되고 권력이 궁핍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서 부유층의 이익을 무시하면 민주정치가 된다. 군주정치는 귀족정치보다 낫고 귀족정치는 시민정치보다 낫다. 그런데 최선의 정치 형태가 타락하면 최악의 형태로 변모한다. 따라서 참주정치가 과두정치보다 더 나쁜 형태이고, 과두정치가 민주정치보다 더 나쁘다. 이렇게 그는 민주정치를 조건부로 옹호하는 입장에 도달한다.

모든 사회적 불평등은 수입의 불평등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논증의 한 부분이다. ‘비례적 정의’를 부가 아니 다른 어떤 장점을 끌어들여 정초하려는 시도는 확실히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과두정치의 옹호자는 수입이 덕에 비례하는 것처럼 가장한다. 성경의 시편 작가는 의로운 사람이 구걸하는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사람이 아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입을 정당하게 얻는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제시한 근본 가정들은 어떤 현대 저술가와 비교해도 차이가 뚜렷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목적은 교양을 갖춘 신사, 말하자면 귀족다운 심성과 아울러 지식과 예술에 대한 사랑도 지닌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에 두 가지 속성을 완벽하게 겸비한 인물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부유층 가운데 있었다. 두 속성의 결합은 페리클레스 시대 말기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야만인들의 침입 이후 신사계급은 북방계 야만인들이었고 교양을 갖춘 사람들은 명민한 남방계 성직자들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교양을 갖춘 신사계급에 의한 정치라는 그리스식 개념이 점점 퍼져 나가 18세기가 되면서 절정에 달했으나 여러 힘의 작용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첫째는 프랑스 대혁명의 여파로 구현된 민주정치다. 두 번째는 산업주의의 등장이다. 세 번째는 대중교육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사계급의 시대는 지나갔다.

 

아리스토텔레스, 삼단논법, 연역법, 귀납법

22.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형이상학 분야에서 플라톤이 최고의 권위를 누리던 고대 말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에서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삼단논법 학설이다. 삼단논법은 대전제, 소전제, 결론 세 부분으로 구성된 논증이다. 삼단논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붙인 가장 친숙한 삼단논법은 ‘바르바라’라고 부르는 형식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대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소전제).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결론)

아리스토텔레스와 추종자들은 연역 추론을 엄밀하게 진술하면 모두 삼단논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삼단논법의 타당한 형식을 전부 나열하고 어떤 논증을 펼치든 삼단논법 형식으로 설명해 냄으로써 모든 오류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삼단논법 체계는 형식 논리학의 시작이었고 그 자체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경탄할만한 업적이다. 그러나 형식 논리학의 시작이 아니라 목적을 고려한다면 세 가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삼단논법은 연역 논증의 한 종류일 뿐이다. 전체가 연역 논증으로 이루어진 수학에서 삼단논법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수학이 삼단논법으로 구성되지 않는 걸 자각한 칸트는 수학이 별도의 논리 원리들을 사용해서 추론하며 논리학의 원리만큼 확실하다고 가정했다.

그리스인은 일반적으로 현대 철학자보다 연역법을 지식의 원천으로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점에 관한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보다 허물이 적다. 그는 귀납법의 중요한 가치를 여러 차례 인정했으며 우리는 어떻게 연역법이 시작되는 최초 전제들을 아는가와 같은 질문에 적지 않은 주의를 기울였다.

귀납법은 연역법보다 설득력이 약하며 확실성이 아니라 개연성만 제공한다. 다른 한편 귀납법은 연역법이 주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한다. 논리학과 순수 수학의 범위를 넘어선 중요한 추론은 모두 연역 추론이 아니라 귀납 추론이다. 유일한 예외인 법률과 신학은 각각 제일 원리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원본, 법령집이나 성서에서 끌어낸다.

삼단논법을 다룬 『분석론 전서』 말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논리학 관련 저술들도 철학사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범주론』이라는 짧은 저작이다. 포르피리오스는 신플라톤주의자로서 『범주론』의 주석서를 썼는데 중세철학에 미친 영향은 주목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범주가 열 가지 있는데 실체, 양질, 관계, 장소, 시간, 위치, 상태, 능동, 수동이다. “어떤 방식으로도 혼합되지 않은 표현들을 나타낸다.”가 범주론의 유일한 정의이다.

‘실체’는 일차적으로 주어에 대한 술어일 수 없고, 주어로 나타나지도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은 주어가 없으면 실존할 수 없을 때 주어의 일부는 아니지만, 주어로 나타난다. 전자의 사례는 정신에 나타난 문법적 지식의 일부이고 후자는 육체에 나타날 수도 있을 일정한 흼이다.

『분석론 후서』는 대체로 어떤 연역 이론이든 곤경에 빠뜨릴 만한 문제, 말하자면 제일 전제를 어떻게 얻느냐는 문제에 관한 연구서다. 연역은 어딘가에서 출발해야 하므로 우리는 증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알게 될 수밖에 없는 명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의 정의란 어떤 사물의 본질적 성질에 대한 진술이라고 말한다. 본질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오늘날까지 모든 철학과 관계가 깊은 개념이다.

실체 개념은 본질 개념처럼 언어상의 편의에 지나지 않는 것을 형이상학에 옮겨 놓은 결과물이다. 실체는 진지하게 다룰 때 난점에서 벗어나기 힘든 개념이다. 실체는 속성들의 주체이며 그러한 모든 속성과 다른 별개의 어떤 것으로 생각된다. 실체는 한마디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된 문장 구조를 세계 구조로 옮겨 놓은 데서 기인한 형이상학적 착오의 산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이 2000년 동안 군림하면서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일은 대단히 어려워졌다. 실제로 근대 전반에 걸쳐 과학, 논리학, 철학은 전부 아리스토텔레스 신봉자들의 반대에 맞서면서 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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