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시메네스, 피타고라스
아낙시만드로스는 과학적 호기심이 왕성한 인물로서 최초의 지도제작자로 알려졌다. 그는 지구가 원통과 같은 모양이라 주장했으며 태양이 지구 크기만 하다거나 27배 크다거나 28배 크다는 등 여러 주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떤 면에서 독창성을 드러내든 아낙시만드로스는 과학적 성향과 합리주의적 성향을 나타내는 철학자다.
아낙시메네스는 밀레토스학파의 3대 철학자 중 마지막으로 중대한 진보를 이룩한다. 그는 제일 실체가 공기라고 말했다. 영혼은 공기이며, 불은 희박해진 공기다. 공기가 처음에 응축되면 물이 되고 더욱 응축이 일어나면 흙이 되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돌이 된다. 그의 이론은 서로 다른 물질들간의 차이를 오로지 응축의 정도에 따른 차이로 설명하는 장점이었다. 그는 지구가 둥근 탁자 모양이고 공기가 만물을 에워싼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타고라스 이후의 사색에 영향을 준 중요한 인물이었다.
밀레토스학파는 성취한 업적이 아니라 철학적 시도로 인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 학파는 그리스 정신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문화를 만나 빚어낸 성과였다. 밀레토스는 부유한 상업 도시로서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원시적 편견이나 미신의 영향이 약해졌다. 이오니아는 기원전 5세기 초에 다리우스 대왕에게 정복당할 때까지 문화 측면에서 보자면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3. 피타고라스
피타고라스는 지성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현자이든 아니든 생존했던 인물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증명 방법으로서 연역 논증을 뜻하는 수학은 피타고라스와 더불어 시작되며 색다른 형태의 신비주의 사상 역시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의 일부는 피타고라스에서 기인하며 이후 심오하지만 유감스러운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는 사모스섬 출신으로 기원전 532년경에 활약했다.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모스는 폴리크라테스라는 참주가 지배했는데 어마어마한 부와 대규모 해군력을 거머쥔 늙고 사악한 자였다.
시모스는 상업에서 밀레토스의 경쟁 지역이었다.
폴리크라테스는 예술의 후원자로서 눈에 띄는 공공사업을 시작했으며 사모스의 미화에 힘썼다. 아나크레온도 그의 궁정 시인이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폴리크로테스의 정권을 혐오한 나머지 사모스를 떠났다.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사상을 최후로 확립한 곳은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톤이었다. 남부 이탈리아의 가장 큰 두 도시가 시바리스와 크로톤이었다. 시바리스는 밀레토스와 교역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크로톤은 의학으로 유명했다.
피타고라스는 크로톤에서 제자들과 공동체를 설립해 한동안 도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크로톤의 시민들이 그를 적대하자 메타폰티온으로 이주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기적을 행하고 마법의 권능을 지닌 신비한 인물로 추앙되었지만, 수학자들로 구성된 학파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는 역사상 가장 흥미롭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가 창시한 종교의 주요 교리는 영혼이 윤회한다는 것과 콩을 먹는 게 죄라는 가르침이었다.
과학은 대부분 초기에 일종의 그릇된 신념과 결부되어 허구적 가치를 부여하기 일쑤였다. 천문학은 점성술과 뒤섞였고 화학은 연금술과 뒤얽혔다. 수학은 좀 더 세련된 오류 유형과 결합했다. 수학적 지식은 확실하고 정확하며 현실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학적 지식은 관찰할 필요 없이 단지 사고를 통해 획득되었다. 따라서 수학적 지식이 일상의 경험에 결여된 이상적 지식을 제공한다는 사고가 출현했다. 수학에 근거한 사유가 감각보다 우월하고 직관이 관찰보다 우월하다고 가정했다. 감각 세계가 수학에 적합하지 않으면 감각 세계는 그만큼 더 나쁜 세계가 된다. 갖가지 방식으로 수학자의 이상에 더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으려 했으며 그 결과로 생겨난 제안들은 형이상학과 인식론 분야에서 빚어진 수많은 오류의 근원이었다.
피타고라스는 “만물은 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에서 수가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발견했으며 음악과 수학 사이에서 확립된 관계는 수학의 전문용어인 ‘조화평균’ ‘조화수열’로 살아남아 사용된다. 지금도 수의 입방이나 평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용어다.
피타고라스와 직계 제자들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직각삼각형에 관한 정리, 바로 직각에 닿는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나머지 변에 해당하는 빗변의 제곱과 같다는 진리다.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수학과 신학의 결합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칸트에 이르는 근대 시기까지 종교철학의 특징을 형성했다. 피타고라스 이전의 오르페우스교는 아시아의 신비 종교와 유사했다.
지성에는 드러나지만, 감각에는 드러나지 않는 영원불멸의 세계라는 개념 전체가 피타고라스에서 비롯된다. 피타고라스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도는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테고 신학자들은 신과 불멸에 대한 논리적 증명을 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내용은 피타고라스의 사상 속에 암시되어 있을 뿐이다.
형이상학, 헤라클레이토스
4. 헤라클레이토스
형이상학은 다양한 기존 가설을 점차 다듬어 함의를 끌어내고 경쟁 가설의 지지자가 강력히 제기한 반론에 응수하기 위해 가설을 제각기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표현하려 애쓰는 가운데 진보했다. 형이상학적 체계에 따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쁨이며 독단에서 벗어나는 해독제다.
그리스인은 추상적 사유에 오래 지속되는 불변적 가치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수학과 연역추리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기하학은 그리스인의 독창적 발명품인데 기하학이 없었다면 근대 과학은 성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러 철학자 가운데 지금도 영향력이 상당한 첫째 인물이 기원전 500년경에 활약했던 헤라클레이토스다. 그는 에페소스의 귀족 출신 시민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생애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주로 만물이 유전한다는 학설로 당시 유명인사가 되었는데 만물유전설은 그가 세운 형이상학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오니아 섬 출신이었으나 밀레토스학파의 과학적 전통에 속하지 않았다. 그는 아주 독특한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불을 근본 실체로 생각했으며 만물은 불 속의 불꽃처럼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탄생한다고 말한다. “죽어야 할 자는 불멸하는 자이고, 불멸하는 자는 죽어야 할 자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살고 다른 존재를 살림으로써 죽으리라.” 세계에는 통일성이 있으나 대립물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통일이다. “만물은 일자에서 비롯되고 일자는 만물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만물은 일자, 곧 신보다 현실성의 정도가 낫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남을 경멸하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으며 민주주의자에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인류를 경멸한 그는 오로지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을 위해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을 좋게 여기며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제왕으로 어떤 존재는 신이 되게 하고 어떤 존재는 인간이 되게 하며, 어떤 자는 노예가 되게 하고, 어떤 자는 자유민이 되게 한다.” 또 “전쟁은 만물에 공통된 것이고 투쟁이 정의이며, 만물은 투쟁을 통해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헤라클레이토스 윤리는 일종의 거만한 금욕주의로 니체의 윤리와 흡사하다. 그는 영혼이란 불과 물이 혼합된 존재이며 불은 고귀하고 물은 비천하다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을 발생시킨 태초 원소가 불이라고 생각했다.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했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원시 원소라 생각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오히려 불이 원시 원소라 했다. 마침내 엠페도클레스는 흙, 공기, 불, 물을 네 가지 원소로 허용함으로써 정치가에게나 어울릴 법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이를 기점으로 고대 화학은 갑자기 멈추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슬람교도인 연금술사들이 현자의 돌, 곧 생명의 양약과 값싼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법을 찾아 나설 때까지 화학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형이상학은 역동적이다. “이 세계는 만물에 대해 똑같으며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는 일찍이 불이었으며 지금도 불이고 앞으로도 언제나 살아 움직이는 불로서 법칙에 따라 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 “불이 변형되어 최초로 나타난 존재가 바다이며 바다의 절반은 땅이고 절반은 회오리바람이다.”
만물이 끊임없는 학설 속에 있다는 학설보다 훨씬 중시한 학설이 하나 더 있었는데 대립물의 혼합 학설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사람은 다양하게 변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과 일치하여 조화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조화는 활과 리라처럼 대립하는 힘의 긴장을 조율하는 것이다.” 투쟁이 중요하다는 그의 신념이 대립물의 조화 이론과 연결되는 까닭은 대립물의 투쟁 속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은 하나다.”, “신에게는 모든 일이 공평하고 선하고 옳지만, 인간이 어떤 일은 그르고 어떤 일은 옳다고 주장한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똑같은 길이다.”.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며 전쟁이자 평화이며 배부름이자 굶주림이다. 그런데 불이 향료와 섞일 때 제각기 내는 향기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듯 신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학설은 대립물의 종합으로 나아가는 헤겔 철학의 씨앗을 품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형이상학은 우주적 정의라는 개념의 지배를 받는데 우주적 정의에 따라 대립물의 투쟁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로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플라톤 이전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모두 그렇듯 헤라클레이토스가 했다는 말도 단지 인용을 통해 알려졌으며 그것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박의 수단으로 인용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스스로 만물이 변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것은 영속한다는 점도 인정했다. 끝없는 지속과 대립 되는 영원이라는 개념은 파르메니데스에서 유래하고 헤라클레이토스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 중심에 자리 잡은 불은 꺼지지 않는다. 세계는 일찍이 불이었고 지금도 불이고 앞으로 언제까지나 살아 움직이는 불이다. 그런데 불은 계속 변하므로 불이 영원하다는 말은 실체가 영원하다는 뜻이 아니라 과정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 일자, 엠페도클레스, 4원소설
5.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변한다고 주장했고 파르메니데스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파르메니데스는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엘레아 출신으로 기원전 5세기 전반기에 활약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에 당시 노인이었던 파르메니데스와 대담을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다. 두 철학자의 대담이 사실이든 아니든 플라톤이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사실이다.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출신의 철학자들은 전반적으로 과학적 탐구에 몰두하고 회의적 경향을 보인 이오니아 철학자들보다 신비주의와 종교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은 운문으로 쓴 「자연에 관하여」에 나온다. 그는 감각이 우리를 속인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감각 가능한 것이 환상일 뿐이라고 매도했다. 유일하게 참된 존재는 ‘일자(통일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로서 무한하며 분할 할 수 없다. 그는 일자를 물질적이고 연장된 존재로 생각한 듯한데 일자를 구형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자는 전부 모든 곳에 있기 때문에 나뉠 수도 없다.
파르메니데스가 펼친 논증의 핵심은 이렇다 너는 생각할 때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니까 네가 어떤 이름을 사용할 때 그 이름은 어떤 것에 대한 이름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유와 언어는 그것들 이외에 대상들이 꼭 필요하다. 너는 어떤 사물에 대해 이때나 저때나 생각하거나 말할 수 있으므로 생각되거나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든 시간에 실존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 왜냐하면 변화는 존재하게 되거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들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유와 언어에서 시작해 세계 전체로 나아가는 논증이 철학사에서 등장한 첫 사례다.
우리는 대부분 낱말에 대해 말하지 않고 낱말이 의미하는 대상에 대해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으로 돌아가게 된다. 낱말은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으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의미해야 한다. 그러므로 낱말이 의미하는 것은 어떤 의미로 실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좀 더 부연하자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으며, 없는 것은 말할 수 없음은 물론 파악할 수도 없다.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린 무엇이 없다는 생각 정도만 할 수 있을 뿐 없음 그 자체를 결코 머리에 그릴 수는 없다. 없음이 없으니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하기에 세상엔 있음만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있음이 여럿 존재하려면 그 사이사이에 없음이 있어야 하므로 있음은 하나뿐, 즉 존재는 통일성을 갖춘 하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존재를 일자라 불렀다.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고 이러한 무시무종의 우주관은 파르메니데스의 예에서 보듯, 서양에서도 플라톤 이전의 자연주의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했다.
6. 엠페도클레스
기원전 440년경의 인물로 파르메니데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같은 시대에 살았다. 그는 시칠리아 남부 해안에 위치한 아크라가스의 시민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한 정치가였으며 동시에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칠리아 도시국가에서는 민주정치와 참주정치 간의 갈등으로 지도자들이 추방당했는데 엠페도클레스도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는 국외추방 이전에는 정치와 학문을 결합하려 했고 국외로 추방된 이후에는 예언자로 살았다.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처럼 운문으로 글을 썼다. 그는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발견함으로써 과학 분야에 공헌했다. 양동이나 비슷한 그릇을 물속에 엎어서 집어넣으면 그릇 안에 물이 꽉 들어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했고 이를 바탕으로 공기가 분리된 실체임을 증명했다. 그는 원심력을 입증하는 사례, 즉 물잔에 줄을 달아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식물에도 암수 구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진화론을 세웠으면 적자생존을 주장했다.
그는 천문학에 관해서 달이 반사광으로 빛을 낸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태양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탈리아 의술 학교의 창시자였으며 그가 권위를 세운 의술 학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흙, 공기, 물, 불을 4원소로 확립한 사람이 바로 엠페도클레스다.
엠페도클레스가 과학 분야 밖에서 보여 준 독창성은 4원소설을 내놓고 사랑과 다툼이라는 두 가지 원리를 이용하여 변화를 설명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일원론을 거부했으며 자연의 변화 과정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의 철학은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보다 더 과학적이었다. 다른 점에서 보면 그는 당시 유행하던 미신을 묵인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