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고 0의 삶
1950년 9월 16일 프랑스의 브장송에서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가 열렸다.
루마니아 출신의 디누 리파티는 백혈병을 오래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다.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청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날 예정되어 있던 연주회를 강행했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 슈베르트의 ‘즉흥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을 순서대로 연주했다. 쇼팽의 ‘왈츠’ 14곡 중 마지막 2번을 연주하다 미처 끝내지 못 한 채 무대 위에서 쓰러졌다. 그로부터 3개월 후, 리파티는 세상을 떠났다.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마지막 자리는 연주회장이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인가에 미쳐서 열정적으로 올인하며 삶을 마칠 수 있다면, 성취한 것이 비록 소소하더라도 그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매사에 열중하지 못함을 느낀다. 끝까지 자기의 길을 걷다가 그 길 위에서 쓰러지는 것은 장엄하고 더 바랄 수 없는 행복한 일이리라.ㅜ 한 가지 일에 깊이 빠져들었다가도 걷잡을 수 없이 애정이 식어버리는 내 성향으로 미루어 앞으로 어느 분야의 신께서 다시 새로운 관심사를 내려주시기나 할지 알 수 없다.
바이엘을 끝내고 소나티네를 시작한 날을 잊을 수 없다. 소나티네 7번을 치면서 처음으로 연습곡이 아닌 연주곡을 치는 느낌에 소절마다 음절마다 손과 몸이 떨렸다. 그 후 오랫동안 피아노 건반 위에서 미쳐 지냈지만, 체르니 40번으로 진도가 나가면서 시들해졌다. 악보를 읽는 초견이 남들보다 느린 편임을 알게 되었다. 학교 발표회에서 연탄곡 ‘윈의 행진곡’을 친구와 함께 연주하다가 두 번째 소절에서 음을 놓쳤다. 초견만 느린 것이 아니라 남 앞에 서는 일이 잦은 피아노 전공은 적성에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다. 흑백의 건반에 대한 오랜 관심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 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가 고려의 옛 수도였던 개경을 돌아보며 읊은 이 시조를 처음 대하던 날의 감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처럼 압축된 표현 속에 이토록 깊은 뜻을 담아낼 수 있다니. 온몸의 감성 세포들이 마구 아우성을 쳤다. 국어 고문 책을 샅샅이 뒤져 시조 200여 편을 찾아냈다. 한 편 한 편 그 시조가 태어 날 때의 시대상과 저자가 쓰게 된 배경과 저자의 당시 심리상태와 약력과 지냈던 벼슬까지 다 외워버릴 정도로 심취했다. 지금도 몇 편 정도는 소리 내어 읊을 수 있지만, 전공을 외국 문학으로 바꾸며 시조 역시 헌신짝처럼 내 버렸다.
어릴 적 우리 집안엔 유명한 문필가나 시인이 없었다.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 심지어 중고교 국어 교사 한 분 정도와도 인연이 없다. 삼대 조까지 거슬러 훑어봐도 안 계신다.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문학적 토양이라는 향토색 짙은 고향도 서울이다. 집안에는 음악 애호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하논이나 코오르위붕겐 등 음악에 관한 책들만 쌓여 있었다. 그 흔한 어린이 잡지 한 권도 없었다. 홀로 여기저기서 책을 빌려 읽었고 글쓰기를 연습했다.
재미 문단에 등단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지만 별 이루어 놓은 것도 없이 세월만 흘렀다. 사람들과 부딪히며 입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각보다 깊은 상흔을 남겼다. 어떤 분야건, 사람과 부대끼지 않고 홀로 독야청정 할 수는 없으리라.
언제 내 삶의 잔액을 점검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잔고 0’이라는 영수증을 받게 되는 그 순간까지 무엇에든 철저히 미쳐 보고 싶다. 미쳐(狂)야 그 무엇에든 미칠(及)것이 아닌가. 삶의 마지막을 불꽃처럼 태울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