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맞추는 저녁

 

 

                                                                        한영

 

 

마음이 어수선하니 몸도 함께 긴장했나 보다.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마주 보이는 책장에 얹어 두었던 퍼즐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꺼내 포장을 뜯었다. 얼마 전 멀리서 사는 딸이 보내준 500 피스 짜리 퍼즐 중 하나였다. 택배를 받고 나서야 딸이 왜 그것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나는 혼자 웃었다.

 

지난 추수감사절이었다. 딸네 식구가 열흘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도착한 다음 날, 사위는 아이들과 함께 나갔다가 퍼즐 하나를 사 왔다. 저녁에 아이들이 심심할 때 함께 맞추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천 피스 짜리 퍼즐에는 눈 내리는 밤, 일곱 명의 꼬마가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사위는 아이들과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지만 일곱 살 손자와 열두 살 손녀는 금세 흩어지고, 사위 혼자 조각을 분류하며 퍼즐 앞에 앉았다. 나는 슬그머니 사위 뒤에 서서 조각을 찾기 시작했고, 몇 개를 맞추자, 기분이 꽤 좋아졌다. 그 순간부터 나도 본격적으로 퍼즐 맞추기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사위가 집에 있을 때는 그가 맞추고, 딸네 식구들이 외출하면 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계획이 없었지만, 우리는 마치 바통을 주고받듯 퍼즐에 몰두했다. 상자 그림과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우리는 금세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위가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나는 테이블 위 퍼즐을 노려보며 조각들을 맞추었다. 남편은 잠이나 자라며 혀를 찼고, 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민망했지만, 이것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변명했다. 아이들이 떠나기 전날, 잃어버린 마지막 조각을 테이블 밑에서 발견했고, 사위와 나는 자연스레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집으로 돌아간 사위와 딸이 보내 준 퍼즐은 나 혼자서도 한번 해 보라는 의미였다. 어쩌면 정말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퍼즐 맞추기는 참 재미있었다. 내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았다. 끝이 명확히 존재하고, 결국에는 완성해 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럼에도 막상 혼자 시작하려니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사위와 함께 맞출 때는 좋았지만, 즐거운 놀이도 홀로 마주하려니 은근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무언가 한번 빠지면 무섭게 몰두하는 내 성격 탓에 취미가 어느 순간 주객을 전도해 나를 붙들어 맬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퍼즐 상자는 한동안 그대로 선반 위에 얹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집착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거나, 아니면 사위가 다시 올 날을 기다렸다가 함께 맞춰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선반 위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퍼즐 상자를 다시 내린 것은 지난주, 동부에서 온 친구 덕분이었다. 저녁 식사 후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 보물 상자 같은 퍼즐이 생각난 것이다. 상자를 꺼내 친구와 함께 색깔별로 분류하고 맞춰 나갔다. 전국의 국립공원이 그려진 퍼즐이라 조금 쉽기도 했고, 같이 맞춰가는 재미가 있었다.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쉬엄쉬엄했는데도 하루 만에 완성했다.

 

 

책장에서 내가 꺼낸 퍼즐은 바다와 등대와 꽃길이 어우러진 그림이다. 가장자리부터 짝을 찾아나간다. 그렇게 해야 맞추기도 쉽고 경계를 먼저 만들고 시작할 수 있다. 빈칸에는 언제나 그 자리에 딱 맞는 한 개의 조각이 있다. 억지로 밀어 넣으면 모서리가 상한다. 그냥 봐서는 전혀 아닌 것 같은 색깔이 의외로 꼭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그 자리에 맞는 조각을 정확히 제자리에 찾아 넣었을 때, 미세하게 딸깍하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진다. 그때 느끼는 감정은 좋은 친구를 갖게 되었을 때와 닮았다. 퍼즐의 색깔과 모양을 자세히 보면 어디쯤 놓아야 할지 느낌이 온다. 퍼즐 조각도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비로소 제자리가 보인다. 가장자리 조각을 맞추며 퍼즐의 테두리를 먼저 그리듯, 내 삶에도 타인이 침범할 수 없고, 나 역시 넘지 말아야 할 분명한 경계(Boundary)가 필요한 법이다.

밤이 깊어 가는데, 나에겐 아직도 맞추지 못한 퍼즐이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