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라고 했지만

 

 

                                                                     한 영

 

 

손가락이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영어 수어를 배우는 시간이다. 참석자의 대부분은 시니어이고, 그들 역시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우리 동네에서 영어 수어를 가르쳐 준다는 전단지를 보고, 수강 신청을 했다.

어떤 특별한 이유나 호기심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의 시상을 위해 나왔던 윤여정이 수어로 축하를 전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영화 CODA의 청각 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Troy Kotsur)가 남우조연상을 받게 되었는데, 윤여정이 트로피를 전해 주려고 단상에 섰다가, 그 트로피를 잠시 사회자에게 맡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두 손을 마주 잡고 높이 들어 올려서 청중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축하한다는 수어였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고, 마침 집 근처에서 부담 없이 참여할 기회가 생기자 망설임 없이 등록했다.

강의를 맡아 준 강사님은 부모가 청각 장애인이었고, 자신은 비장애인이라고 했다. 그녀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수어를 배우는 것이 더 어려웠다고 한다. 미국 전역에는 수어를 쓰는 사람이 약 50만 명 정도가 있지만 청력이 저하된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강사님은 주요 모임에서 수어 통역사로 바쁘게 활동하면서도, 시간을 쪼개서 수어를 알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영어 알파벳을 표현하는 손동작을 익히고, 숫자를 배우고, 간단한 표현을 배운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일단 떨어진 기억력은 어쩔 수 없으니, 연습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수강생은 모두 시니어라서 맨 앞에 앉은 할머니는 끝의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고 그 옆의 할아버지는 가운뎃손가락이 잘 구부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으로 가득 찬다.

 

수어로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수어에서는 손동작보다 표정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손동작과 표정이 함께 가야 한다. 사실은 표정이 대화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 쉬운 것이 어렵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사람들은 언어가 화려해졌지만, 솔직한 표정은 잃어버린 듯하다. 하려고 하는 손동작과 같은 표정을 짓는 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 단지 손동작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표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상대방의 표정을 주의 깊게 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대화에서 나는 상대방의 표정을 주의 깊게 바라본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생겨난 것일까. 수어의 세계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를 묻거나 상대를 직접 가리키는 동작도 전혀 실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루는 강사님이 우리 모두에게 절대 말을 하지 말고 수어로만 해 보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잠시 후 그녀가 잠시만요!’라고 외치더니 잠깐 말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우리 수강생들이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며, 편안히 숨을 쉬라고 했다. 모두 웃고 말았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우리는, 잠시 말을 하지 않는 것조차 힘들어서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숨을 참고 있었다.

전에 유튜브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경연대회였는데 댄스팀이 나와서 음악 없이 공연을 했다. 음악이 없으니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동작은 훌륭했지만, 음악 없는 공연은 어딘가 밋밋하고 어색하며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마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다. 공연이 잠시 멈추고 리더 격인 사람이 나와 여러분이 느낀 이것이 바로 청각 장애인들의 일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하던 청중이 손뼉을 크게 쳤는데 그 모습이 가끔 생각난다.

사실 우리는 소음 속에서 살고 있다. 생활 소음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말, 의미 없는 말들을 듣는다. 하고 싶지 않은 말도 한다. 대화하면서도 표정은 굳고, 때로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기도 한다.

강사가 청력 장애가 있는 손녀를 데리고 왔다. 아이는 앙증맞은 손 모양으로 자신의 의사를 잘도 표현한다. 특별히 수어를 배운 적 없이 사물을 보고 보이는 대로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아이를 따라 하다가 내 손을 바라본다. 굳어진 손과 머리를 가지고 겨우 열 번의 실습으로는 별로 기억할 게 없을 듯하다.

배운 것을 다 잊는다고 해도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만 기억할 수 있어도 좋을 텐데. 하지만 말로도 쉽게 하지 못하는 그 표현을, 과연 표정까지 담아 손으로는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거울을 보고 사랑해라고 해보지만 내 얼굴은 그 말과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