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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당한 젊은 괴테, 포도주·글쓰기로 상처 치유했다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고 있는 로테와 베르테르의 삽화. [사진 위키피디아·GettyImagesBank]

어린 동생              동생을 돌봐주고 있는 로테와 베르테르의 삽화. [사진 위키피디아·GettyImagesBank]

 

괴테에게 9월은 운명이 뒤바뀐 달이다. 그가 변호사로서 면허를 취득한 것은 1771년 9월 3일, 사회생활의 첫 출발이었다. 한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던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최고법원이 있던 베츨라에서 법관 인턴 실습을 하다가 어느 날 아침 그 작은 도시를 떠나게 되는데 1772년 9월 10일이었다. 칼스바트라는 온천 휴양도시에서 역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불쑥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 것도 1786년 9월의 어느 새벽이었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베츨라를 떠난 뒤 탄생한 소설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면, 단조로운 궁중 생활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지쳐 먼 도피 여행을 떠났다가 쓴 작품이 『이탈리아 기행』이었다. 작품 속 두 여인의 이름이 모두 샤를로테(Charlotte)였다는 것도 흥미롭다. 전자는 샤를로테 부프, 후자는 샤를로테 폰 슈타인. 각각 약혼자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와인·글쓰기·여행이 괴테의 인생 3락

세계 최초로 리슬링을 재배한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 괴테가 사랑한 와인이다. [사진 손관승]

세계 최초로 리슬링을 재배한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 괴테가 사랑한 와인이다. [사진 손관승]

한 명의 매력적인 여성과 그녀를 사랑하는 두 명의 남자라는 삼각관계는 성공 드라마의 공식과도 같은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장르의 고전에 속한다. 나폴레옹은 1808년 에어푸르트에서 괴테를 만났을 때 이 작품을 무려 일곱 번이나 읽었다고 고백했으며 이집트 원정 에도 가져갔다고 한다. 롯데그룹을 창업한 고 신격호 회장이 샤를로테의 애칭 로테(Lotte)를 기업명으로 정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화.

이 작품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한 번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보내는 서간체 형식으로 진행된다. “나이에 비해서 쾌활하고 친절하고 애교 있는 주막집 아주머니가 포도주와 맥주, 커피를 따라준다”고 주인공의 단골집을 소개하면서 주막집 앞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호메로스를 읽는 것이 즐겁다고 말한다. 포도주와 커피는 호메로스의 글, 칼스바트 온천과 함께 괴테가 평생 즐기던 것들이다. 특히 와인은 글쓰기, 여행과 더불어 괴테의 인생 3락(三樂)이었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식사 때마다 와인이 빠지는 법은 없었다. “포도주 한 잔으로 기분을 내기 시작해서 한 병을 몽땅 마셔버리는 버릇”을 나무라는 장면은 학창 시절 괴테의 술버릇을 떠올리게 한다.

젊은 법조인으로 베츨라에 왔던 괴테는 부프라는 사람의 집에 자주 드나들다가 그의 딸 로테를 좋아하게 된 것,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으니 하노버에서 파견된 크리스티안 케스트너였다. 작품 속에서 괴테는 베르테르, 케스트너는 알베르트로 이름이 바뀌지만 여주인공 이름은 로테 그대로다. 로테의 실루엣이 그려진 그림을 방에 걸어놓고 “밖으로 나갈 때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몇 천 번이나 그 그림에다 키스했고 또 몇 천 번이나 눈인사를 했다”는 고백이나 “우리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사라져야 한다”는 주인공의 말은 곧 작가의 마음이었으리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채 괴테는 예정보다 훨씬 빨리 이 도시를 떠났다. 그것이 바로 9월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츨라에서 알고 지내던 예루잘렘이라는 동료가 한 여인을 짝사랑하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때 연적 관계였던 케스트너에게 그 사건에 대해 알려달라고 요청해 그로부터 상세한 보고서를 전달받는다. 사건의 객관적이고 세세한 사실관계 조사뿐 아니라 훌륭한 표현들도 얻게 된다. “어떤 성직자도 그를 배웅하지 않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그것이다.

자살사건 1년 후 괴테는 소설을 쓰기 시작해 짧은 시간 내에 완성했다고 한다. 베르테르는 분명 괴테가 창조해낸 분신이지만, 본인의 이야기와 다른 사건을 절묘하게 합친 완전한 허구의 이야기이며 결말이 특히 그러하다. 베르테르는 하인이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에게서 권총을 빌려오자 빵과 포도주를 가져오라 한다. 다음날 새벽 하인이 방으로 들어왔을 때 베르테르는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권총이 떨어져 있었다. 베르테르 옆에는 한 잔 정도밖에 마시지 않은 포도주 병이 놓여 있었다. 다 마시지 못한 채 남겨진 붉은 색 포도주는 그의 이루지 못한 뜨거운 열정을 의미한다. 한 잔의 포도주가 주는 위로의 힘을 아는 자만이 묘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괴테가 실연으로 베츨라를 떠난 뒤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외롭고 힘들었을 때, 옆에서 지켜준 것도 포도주였다. “다른 이들이 (포도주에)취해 열정을 날려버린다면, 나에게 그 열정은 항상 종이 위에 있었지.” 괴테에게 포도주는 글쓰기와 함께 자기치유의 도구였다.

롯데 기업명, 여주인공 로테에서 따와

괴테는 훗날 ‘베르테르에게’라는 시에서 “나는 남고 너는 떠나기로 선택되었으니”라고 노래한다. 자신이 창조해낸 주인공을 죽게 만들고, 본인은 정신적 고난으로부터 구원받으니 작가의 특권이다. 이 소설로 인해 괴테는 일약 슈트름운트드랑 문예사조의 대표주자로 떠오른다. 질풍과 노도처럼 혹독한 통과의례 과정을 지나는 젊은이들 마음에 공감하는 대표작가가 된 것이다. 흔히 괴테를 가리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천재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그의 고통과 고뇌를 간과하기 쉽다. 누구나 상처가 있고, 좌절의 순간이 온다. 괴테는 고통 받을 때마다 작품을 썼다. 평범한 사람과 괴테를 구분하는 점이다. 실연은 결과적으로 괴테에게 작가라는 새 길을 열어주었다.

지난여름 작품의 무대인 베츨라를 방문해 그가 근무했던 재판소 건물과 로테의 집을 둘러보고 로테의 길을 걸었던 이유이다. 명품 카메라 ‘라이카’의 본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베츨라는 주민 5만5000명의 작은 도시다. 괴테가 좋아하던 슐로스 요하니스베르크 와인을 앞에 놓고 건배를 외쳤다. 고통 받는 이 시대의 베르테르를 위하여!

“나는 날마다 새롭게 껍데기를 벗어 던집니다.” 이탈리아 여행길에서 괴테가 썼던 편지 내용이다. 껍데기와 탈피는 괴테의 중요한 키워드다. 과거의 껍데기에서 스스로 탈피해야 한다. 인생에 고전(苦戰)할수록 고전(古典)에 해답이 숨어있다. 이겨내야 한다.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 를 지냈으며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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