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ana 시사회를 보고

 

최숙희

 

굳이 핑계를 대자면 늦은 나이에 이민 와서 자리를 잡느라 바빴던 탓이다. 내게 음악, 특히 클래식은 그저 숨 가쁜 일상 너머에 있는 사치로 생각하고 살았다. 수십 년을 LA에 거주하면서도 헐리우드 볼을 찾은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화려한 불꽃놀이가 압권인 독립기념일 무대나 세계적인 한인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를 직접 보고 싶어 큰맘 먹고 나섰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내게 그곳은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먼 특별한 이들의 공간이었다.

 

그러던 내게 특별한 초대장이 찾아왔다. 조카 친구가 엘에이 필하모닉의 비올라 부수석으로 당당히 합격하여, 영화 ‘Moana World Premiere’ 초대권을 보내온 것이다. 아들에게 자랑했더니 LA Phil 단원이 되는 것은 벼락에 맞을 확률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나보다 더 흥분했다. 궁금하여 챗GPT에 물어보았다. 단원이 은퇴하거나 사망해야만 겨우 공석이 생겨서 오디션이 열리고, 오직 연주 소리 하나만으로 평가하는 철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단다. 최고의 대우는 물론이고 은퇴할 때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종신 단원(Tenure)이라니, 과연 클래식 연주자들의 꿈의 직장다웠다. 미국에 유학 와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그 아이가 흘렸을 땀방울을 생각하니 같은 한인으로서 자랑스럽고 자부심이 밀려왔다.

 

디즈니 만화영화를 실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로 리메이크한 것을 영화 개봉 전 세계 최초로 볼 수 있다니 흥분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선 헐리우드 볼은 이미 영화 속 모투누이(Motunui)그 자체였다. 주최 측이 재현해 놓은 폴리네시아의 이국적인 정취에 우리는 단숨에 압도되었다. 모아나가 타고 바다를 누비던 전통 돛단배(Wayfinding Canoe)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영화 속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관람객들은 근사한 포토 존에서 축제를 즐기는 듯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영화 속 아웃핏을 입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베스트 드레서 콘테스트가 열렸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단순한 관람객을 넘어 진정으로 축제를 즐기는 주인공처럼 보였다.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온 나는 잠시 낯선 이방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미국에 온 이후 내 삶이 늘 그랬다. 남들의 화려한 무대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구경꾼이었다. 하지만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되어 뜨겁게 숨 쉬는 열기를 오늘 직접 느껴보니 내 마음속에서도 작은 일렁임이 시작되었다. 다음번에는 나 역시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무대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어 축제를 즐겨보겠다는 뒤늦은 다짐이다.

 

어둠이 내리고 폴리네시아 전통 음악과 춤으로 화려한 오프닝 무대가 펼쳐졌다. 유명 배우 드웨인 존슨(Dwayne Johnson)이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석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영화가 상영되고 LA Phil의 연주는 웅장하고 감동적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잊고 살았던 내 안의 모험심을 깨워준 영화 속 모아나처럼, 나 역시 이민자라는 이방인의 옷을 벗고 진정한 내 삶의 항해를 시작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