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행 기차

 

 

   대학생이 되어 자유를 만끽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인천에서 심양으로 향했다. 나는 심양이 처음인데, 심양을 벗어날 기회만 보고 있던 친구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홍콩행 기차표를 샀다. 예상밖으로 흘러가는 여행이 즐거웠다. 기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대륙의 풍경을 보며 느낀 건 뜻밖에도 청량함이었다. 얇고 투명해서 산들바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무계획이 주는 자유는 상쾌했다.   

 

  홍콩 여행을 마친 우리는 심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국경에서 가까운 중국 심천역에 들어섰다. 한낮인데도 역은 어두컴컴했다. 사람이 많았고 소란스러웠다. 자연스레 시선이 시끄러운 쪽으로 향했다. 부스 안의 여직원이 마이크를 켜둔 채 손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상황이라 뚫어져라 보고있는 내게, 표가 없는데 계속 물으니까 화를 내는 거라고 친구가 알려주었다. 표가 없대? 우리 것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여행내내 기차표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무계획의 쓴맛을 보는 건가? 역시 여행은 계획적이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심양행 매표소를 찾기 위해 역사를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다! 친구가 한 곳을 가리켰고, 그쪽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일시정지했다.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내 눈에 沈阳(심양)보다 먼저 들어온 글자가 있었다. 평양. 심양행 부스 위에 한글로 크게 쓰여 있었다. 평양은 심양을 거쳐가는 것 같았다.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지명을 보는 순간 두려움에 이어 처음 겪는 감정이 따라왔다. 이게 무슨 기분이지? 친구에게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이 감정을 다시 꺼낸 건 그로부터 2년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였다. 근처에 있는 북한식당을 다녀왔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식당에 들어갈 때 무섭지 않았느냐 질문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평양행 기차표를 살 수 있었던 매표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뭐가 무서워, 식당일 뿐인데 라고 지인이 대답했던가. 그날 나는 두려움 뒤로 따라온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아리송하게 뭉쳐있던 기억을 털어놨다. 슬픔의 한 종류였지만 대상이 없는 슬픔이었다. 서러움일까? 하지만 무겁게 덩어리 진 서러움이 아니었다. 만약 그것이 서러움이었다면, 가볍게 소용돌이 치다 날아가버리는 서러움이었다. 나는 갈 수 없는 곳.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 홍콩과 중국을 넘나들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내가 마이크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직원에게 “평양” 이라고 말하면 평양에 갈 수 있을까를 상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평양행 기차를 탈 수 없다. 

 

  살면서 통일이나 북한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매년 6월이면 학교에서 한국전쟁과 통일에 대해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분단 국가라고 하지만 그로인해 내가 겪는 불편함이 없으니 그것들은 그저 교과서에만 보는 단어이고 또, 단어일 뿐이었다. 그랬는데.   

 

  대한민국에서 받은 모든 교육의 바탕에는 ‘자유’가 있다. 그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억압’을 글로 배웠으니 실감이 나지 않았으리라. 교과서에서만 보던 단어가, 그저 단어일 뿐이었던 것들이 마침내 살아 움직여 마음을 요동쳤다. 나의 자유는 온전한 모양이 아니라고 평양, 두 글자가 말하는 듯 했다. 

 

 

  하노이에서 일년간 머무는 동안, 한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어 교육에 관심이 있던 나는 그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선생님을 소개 받았다. 중년의 여성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 후 어떤 교재로 수업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대답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분이 구사하는 낯선 한국어에 사로잡혀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뉴스에서나 듣던 북한 말이 내 앞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 사람의 국적은 어디인가? 혼란스러웠다. 서울의 언어를 평양의 언어로 가르친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선생님 고향이 어디예요?”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그분의 온갖 사연이 시작되었을 그곳이 알고 싶어 궁금한 것을 돌려 물었다. 그분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짐작하는 그곳이 맞다는 것일까? 그곳의 이름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그것이 사실일까봐 두려웠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 그 순간에 나를 다시 놓아본다. 뭐가 두려웠을까? 잘 아는 낯선 것은 두려운 것인지도 몰랐다. 낯설지만 아주 잘 알기때문에 두려워지는 것이라고. 그날의 나는 그것이 왜 중요했을까? 고향이 어디든, 국적이 무엇이든 제3국에서 만난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노스(north)와 사우스(south)를 뺀 ‘코리아’가 그걸 가능하게 하는데.

  

  하노이 도심을 걷던 어느 날, 북한대사관 앞을 지나는데 윗층 창문 앞에 흰 셔츠를 입은 꼬마가 눈에 들어왔다. 멈춰서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제3국에서 만난 우리는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안녕, 나는 서울에서 왔어. 눈빛으로 인사를 건넨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걸으며 오래 전 심천역에서 본 ‘평양’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렸다. 나는 평양에서 왔어, 라고 꼬마가 인사하는 상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