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이 가르쳐준 삶

 

최숙희

비빔밥하면 1986,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선배가 데려간 서울 북창동의 전주회관이 떠오른다. 한국의 전통미를 고스란히 살린 식당의 인테리어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손님을 맞이하던 직원들의 모습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곳의 대표메뉴는 생전 처음 맛본 새우젓으로 간을 한 전주 콩나물국밥과 뜨거운 돌솥에 담겨 나오는 비빔밥이었다. 훗날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갖은 나물이 골고루 들어있어 영양의 균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비빔밥을 먹곤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비빔밥은 내 삶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는 오늘은 비빔밥이나 간단하게 해 먹지.”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난다. 비빔밥은 한 그릇 음식이라 간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물 하나하나를 다듬고 삶아 무치는 손길과 시간이 담겨있다. 겉보기와 달리 비빔밥은 정성과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인 셈이다.

 

이 음식의 본질은 조화와 포용이 아닐까. 제각각의 색과 맛을 지닌 재료들이 고추장, 참기름과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맛은 독보적이다. 나물을 하나씩 따로 먹을 때와는 사뭇 다른 조화로운 맛이다. 제각각일 때 미처 드러나지 않던 맛이 함께 비벼질 때 비로소 살아난다. 저마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맛을 침범하지 않고 하나의 특별한 음식으로 완성되는 것, 그것이 비빔밥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비빔밥의 묘미는 내가 속한 산악회의 점심시간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쌀쌀한 겨울철을 제외하면 산행 점심은 늘 같다. 단톡방에 산행 공지가 올라오면 회원들은 각자 가져올 재료를 댓글로 달기 시작한다. 콩나물, 시금치, 애호박, 무나물처럼 친숙한 나물부터 직접 텃밭에서 가꾼 미나리, , 민들레, 상추 같은 싱싱한 채소와 계란프라이까지 더해진다. 각자의 냉장고를 털어 함께 만드는 우리만의 특별식은 늘 새롭고 풍성하다. 음식솜씨가 서툰 내게는 새로운 레시피를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지난주에는 서로를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을 보았다. 혼자 사는 남자 회원들에게는 준비하기 쉬운 참기름이나 고추장, 바로 먹을 수 있는 김을 가져오도록 넌지시 권하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배려지만 누구도 부담을 느끼거나 소외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쓰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비빔밥과 많이 닮았다. 저마다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내 생각만 고집하기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배려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깊은 풍미를 지닌 비빔밥처럼 완성된다. 산속에서 양푼을 놓고 밥을 함께 비빌 때 우리는 사람의 정과 온기도 함께 비비고 있는 것이리라. 서로 다른 재료가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내듯,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나눌 때 세상도 더욱 살만한 곳이 된다.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던 비빔밥은 오늘도 조용히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