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을 저으며 너를 생각했다
오늘 낮에는 쿠쿠가 지어놓은 밥을 저으며 너를 생각했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일까. 동시에, 내가 잠깐 놀러 갔었던 중국 심양에 있던 너의 아파트 주방을 떠올렸다. 조리대 옆 창문 너머로 보이던 공원. 공원을 메우고 있는 나무들에는 녹색 잎이 무성해서 한여름이었는데도 내 머릿속 너의 아파트는 무더위가 아닌, 푸른 싱그러움으로 기억되어 있다. 분명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그곳이 아닌데. 너를 떠올릴 때면 나는 늘 그 아파트의 주방 창문이 먼저 떠오른다.
강렬하다는 것 혹은, 특별하다는 것은 그래서 강렬한 것이고, 그래서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 삶에서 단 한 번만 머물렀던 장소. 다시 갈 수도 다시 갈 이유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공간. 그랬기에 강렬했고 그래서 특별해 나는 아직도 그곳을 먼저 떠올리나 보다.
비어 있는 방이 있으니, 언제든 편하게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물여섯의 나는 생에 첫키스를 앞두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서 머문다는 것은 유명 관광지를 보고 호텔로 돌아가는 보통의 여행과는 달랐으므로. 그럼에도 가겠다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던 이유는 정말 가도 되는가 하는 표면 뒤에 있는 물음 때문이었다. 너의 제안이 온전히 진심일까 하는 너의 마음을 읽어내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가까울수록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가까웠으니 당연히 진심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번 더 뒤집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내가 그러하기에 너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거절 못 해 생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너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으리라.
빈방이라고 했지만 비어 있지는 않았다. 책상이 있었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한쪽 벽이 음반과 DVD로 채워져 있었다. 그 방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방문을 여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남편은 조금 전 목적지인 중국 허페이에 도착했다고 알려왔다. 이번 출장은 베이징을 거쳐 간다는 말에 나는 이십여 년 전 내가 갔던 베이징을 떠올렸고, 생각은 자연스레 너의 아파트가 있던 심양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쿠쿠가 갓 지어 놓은 밥을 저으며 너를 떠올린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너의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었을까? 더우면 라면조차 끓이기 싫어 학교 앞 식당에서 밥을 포장해 온다는 너의 말 그리고 중국 화폐를 모르는 나에게 음식값을 위안으로 알려준 후, 사 먹는 게 더 싸다고 설명해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동네 주민처럼 주전부리를 사러 나가던 길에 그 식당을 알려주던 너. “저기가 거기야.” 그래, 그때도 여름이었지. 더웠어. 어쩌면 그때의 너와 나도 밖에서 밥을 해결하고 너의 아파트 주방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 기억은 주방 창문에서 시작되는 짤막한 몇 개의 영상이 고작인 편린뿐.
심양에서 돌아온 후, 나는 너와 함께 본 <중경삼림>의 두 번째 에피소드를 여러 번 보았다. 그런 사랑을 동경하며 영화 삽입곡을 때때로 흥얼거렸다. 노래 가사의 뜻은 모르지만, 왠지 알 것만 같은 기분으로. 몽중인(夢中人) 그리고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
그래, 캘리포니아. 쿠쿠 앞에 서 있는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
이렇게 너를 떠올리고 있자니, 내가 거쳐 온 모든 곳들이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그렇게 거쳐 갈 것이기 때문에 내 무의식이 특별한 곳에 따로 모아 두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는 그렇게 가끔 상자를 열어 너를 만난다.
남편은 중국에 있고, 아이가 잠들면, 오늘 밤 오랜만에 영화를 볼까 한다. 심양에 있던 너의 취미 방에 나를 데려다 놓고 너를 내 옆에 앉힌 후. 그래, 우리 함께. 쿠쿠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아무래도 <중경삼림>인가 보다. 캘리포니아에서 듣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어떤 느낌일지, 영화를 재생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모르는 채로. 몽중인, 꿈속의 사람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