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쌀영감에서 상남자로 / 정임표 

 

나이가 들어가니까 자식들과 후배들의 일에 시시콜콜 잔소리가 늘었다. 허리에 힘이 떨어지니 기운이 입으로 올라와서 말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남의 실수를 보고 내가 아무리 바른 가르침을 했다 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서 듣는 이들의 반응은 다르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알려 주는 일이라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반발을 불러오기도 한다. 나는 수필가이며 언어의 연금술사라 하는 문학인이다. 지적하는 말일수록 더욱더 예술적인 표현을 써야 하고 깨우침을 주려는 말일수록 연애하듯이 은밀히 속삭여야 하는데도 나이가 들어가니 그게 쉽지 않다. ‘젊은 놈들이 어른을 몰라보고’ 하는 심정이 먼저 작용되는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깊어지니 겨울을 대비하려는 자기 보호 본능이 커진 탓일 것이다.(아니다 젊었을 때 사랑의 밀어를 속삭여 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누구나 다들 실수가 많다. 잘 해보려고 애를 써서 해 놓은 일들을 두고, 서툴다고 나이 든 어른이 나서서 이것저것 지적하며 난도질하면 기분 좋을 사람 별로 없다. 양약일지라도 입에 쓰면 인상을 찡그리게 된다. 지적을 당해서 면전에서는 태연한 척해도 정작 돌아서서는 긍정적으로 반응 되지 못하는 게 사람 마음이 아니던가. 반복해서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스스로 이치를 깨닫게 되니 “혼자서도 잘하네!”하고 내버려두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약이 된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걸고 정말로 외쳐야 할 때가 있다. 고귀한 생명을 구해야 할 때와 부패하고 썩은 거대 권력과 제도와 인간에게 굴레를 씌우는 거짓 이념과 싸울 때이다. 그래서 나는 성병조 수필가가 쓴 <나홀로 소송> 같은 그런 쓴 약을 좋아하고 그런 지사 정신을 지닌 강골을 존경한다. 별것 아닌 일을 두고 시시콜콜 사사건건 지적하는 일에 나서면 좁쌀영감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시중의 격언을 나도 명심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노인이 되면 저절로 왕년의 관록을 자주 들먹이게 되는데 그게 다 내 힘이 쇠약해져 가니 케케묵은 힘이라도 끌고 와야 젊은 놈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심리 탓이다.

좁쌀영감을 요즈음 말로는 “꼰대” 라고 표현한다. 말로만 다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년이면 지공거사가 되는데 나도 모르게 좁쌀영감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그게 참으로 두렵다.

내 호가 범몽(凡蒙= 평범함으로 뒤집어쓴 사람) 아닌가. 대범하게 더 대범하게, 시원하게 더 시원하게 살아야겠다. 이 글을 읽으신 저를 아시는 선생님들은 이제부터 저를 만나시면 "평범함으로 뒤집어 쓰라"는 일깨움을 주는 의미에서 제 아호를 많이 불러주시면 감사하겠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세상의 인정과 존경을 받아서 어디에 다 써먹을 것인가? 다 자기 만족용일 뿐이지 않는가? 어떤 여성이 나에게 ‘상남자’라 하였다. 나는 그 여성분이 오드리 헵번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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