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춘추] 미주한인정착 122주년과 한미동맹

 

올해로 미주한인 이민122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 이민정책의 근본바탕은 선조들의 건국이념인 자유 평등 정의의 정신을 실현코자하는데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이민자들이 그 소망의 땅으로 미국을 향하여 몰려오고 있었다. 한민족의 이민사도 돌아보면,190211월 조선말 고종이 하와이 농장주들의 요청에 이민을 허락함으로서 노동자 이민의 물꼬를 트였다.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 2년 후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상실했다. 이어 5년 후 국권마저 박탈된 디아스포라민족이 되어버렸다.   2025113일은 한인이 미대륙에 상륙한지 122주년이 되어 하와이 이민 종가를 중심으로 미주전지역에 기념식이 성황리에 거행되었다.  

 

힘들고 고단하고 모든 일이 순탄치 않았을 노동이민자들이지만, 이민선조들은 조국을 위해 쌈짓돈을 모아 해방 전까지 무려 3백만 달러가 넘는 자금을 보냈다. 당시 상황에 견준다면 정말 대단한 애국심이었다.  

또한 올해가 한미상호방위조약72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1953101일에 체결된 이 조약이 우여곡절 끝에 19541118일에 발효한 대한민국과 미국사이의 군사동맹에 관한 조약으로 법적기반이다.

 

현재 재미 한인인구는 약 260만명으로 하와이에만 5만명에 이른다. 122년전 102명으로 시작된 이민자수가 한 세기만에 놀라울 만큼 증폭한 셈이다.

 

미연방의회는 그동안 재미한인들의 개척적인 삶과 미국사회에 기여한 헌신적인 활동과 업적을 높이 평가해 한인이민의 역사가 시작된 113일을 미주한인의 날로 선포했다. 의회는 매년 이를 기리는 성명을 놓치지 않고 발표하고있다.

 

6.25전쟁 발발 후 3년이 지난 허망한 전황속에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우리 측 주장은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압력을 가하여오자 대통령은 6.18일에 25,000여명의 반공포로를 독단적으로 석방하는 초강수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워싱톤은 경악했고 전 세계가 놀랐다. 크게 노한 미국은 이대통령을 재거하려는 이른바 에버래디계획을 구체화하여 실행계획을 세웠다.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체결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으면 작전권을 환수하여 단독으로 북진통일을 하겠다고 맞섰다.

 

결국 미국은 한 발짝 물러서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하여 19537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결국 1951118일 정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휘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역사상 가장 성공한 조약으로써 대한민국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뿐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국방전략에 끼치는 영향으로 첫째 자주국방의 실현이다 둘째로 베트남 전쟁당시 미군의 철수 배경을 되돌아봄으로써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 한국의 국방력을 강화시키는 명분이 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대한민국은 미국의 공식적인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아울려 한국측은 안전보장에 만족하지 않고 전후 제건을 위한 미국의 경제 군사적 지원도 병행하여 추진했다.

 

조약이 체결됨으로 한미방위체제는 한국방위의 핵심을 이루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방위력의 증강은 물론 경제적 발전까지 이룩할 수 있었다. 특히 주한미군 한미연합사령부설치는 이 조약을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안으로 입증된다. 앞으로 상호협력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은 강력한 국방전략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