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결혼/ 정아경

 

“그럼 우린 뭐야?”

“반 부부지”

“반 부부?”

 

한 지붕 아래 살지 않지만 부부나 다름없는 관계를 반 부부라고 정의하면 어떨까? 한 지붕 아래 살지만 따로 생활하는 부부는? 반은 같이 살고, 반은 따로 살면 반 부부라 규정하면 되려나? 정의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반은 부부라는 의미이다. 반은 부부라면… 반은 부부가 아니라는 열린 결말에 웃음이 절로 났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야?”

“방금 내가 만든 신조어야”

 

그의 말에 깔깔대며 어학사전에 ‘반 부부’라는 키워드를 쳐보았다. 없는 단어였다. 당연히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사전에도 정의하지 않은 단어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고, 누구도 경험하지 않은 길이라는 것이다. 없는 단어는 없는 개념이다. ‘있는’ 보다 ‘없는’이란 단어는 온통 불모의 이미지다. ‘반 부부’라는 텅 빈 단어에 우리만의 색깔을 입힐 생각에 나는 생기가 돈다. 툭~하고 던진 말을 덥썩~ 물어서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보며 그는 빙그레 웃는다.

둘이서 하나가 되었다가 하나가 다시 둘이 되는 ‘반 부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익숙한 보편을 깨고 낯설고 불안한 새로움을 창조하는 철학자와 작가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흥미로운 그들의 생애를 수 십 년 읽고 감동하다보면 아주 미미하지만 나의 일상도 흠모한 만큼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강렬하고 초월적인 것에 끌리는 나에게 그는 언제나 영감을 준다. 그러다 자신이 던진 말이 글로 완성되어 잡지에 실리면 그는 작품의 반은 자기 몫임을 강조한다. 반은 인정한다. 반만 인정해도 인정인가…

 

모든 사람들이 말렸던 그와의 결혼이었지만 30년을 함께 했다. 가난이 대문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도망간다는 서양속담까지 인용하며 나의 선택을 말렸던 대학동기의 자신만만하던 어조와 눈빛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애정 어린 우려든, 냉철한 충고든 말리던 이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나의 선택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쪽으로 향했다. 뜨거운 가슴 하나만 믿었던 나는 먼후일에 그들의 우려와 충고가 기우였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일상은 혹독하고 분주했지만, 견딜만했다.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삶이지만 관능이 충만했던 시기였고, 에로틱으로 몽환적인 하루의 마무리가 가능했다. 엉뚱하고 도발적인 날들도, 계산이 느려 손해 보는 날들도 가득했지만, 소소한 행복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결혼의 목표가 부를 쌓는 것이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성공의 목적이 부를 축적하는 것이라면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나 가치관이 같은 이의 손을 잡고 삶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라면 나름 만족한다.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며 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아들 없는 노후의 비참함을 상세히 일러주며 아들 낳기를 독려했던 어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던 당돌함을 후회하지 않는다. 가난은 대문으로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경고 없이 들이닥쳐 일상을 흔들었다. 도망가려는 사랑을 지키려 그와 나는 두 손을 놓지 않았다. 가난은 불편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을 놓지 않은 30년의 시간은 새로운 에토스를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그 누구도 나의 선택이나 삶의 방식에 태클을 걸지 않는다. 30년 동안 지속한 삶의 태도는 나의 방식이 되었다. 새롭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고정관념을 이겨낸 에토스의 탄생은 나의 삶이 되었다.

 

Post, 결혼!

30주년을 기념하며 나는 post, 결혼을 꿈꿔본다. 30년 전 나의 선택을 30년 후의 나는 지지하고 응원한다. 30년 후,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곁에 남편이 있어야 행복한 노후라는 선배들 말에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이 행복한 노후’라고 마음속으로 반론한다. 그는 아침형 인간,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그와 나의 시차는 두바이와 서울정도이다. 그는 시골이 좋고, 나는 도시가 좋다. 그래서 그는 시골에 자신의 공간을 만들었고, 도시의 아파트는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신혼에는 상상조차 못한 마음이다.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잠드는 순간까지 손을 잡아야 만족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고 생각조차 같이 공유하기를 원했다. 이제는 혼자의 시간에, 혼자만 누리는 자유를 조금씩 늘리고 있다. 그가 내 집에 오면 ‘손님 오셨어요’ 라며 능청을 떤다. 며칠 후 자신의 공간으로 갈 손님이라 생각하니 웬만한 트러블은 참아진다. 신기방기한 현상이다.

30년 동안 많이 닮아버린 그와 나는, 첫 맹세를 하던 이십 대의 우리를 믿고, 우리의 방식대로 부부의 정의를 다시 내려 본다. 함께 지내는 반은 부부,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는 반은 자유인으로…. 그것이 그와 나의 방식이다. 와인잔을 부딪치며 새로운 규칙에 동의한다. 2023년은 그 원년이다. 반의 자유로움을 무엇으로 채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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