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노혜숙 

 

한 청년이 머뭇머뭇 떡장사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얼마예요?"
"천오백 원여."
개피떡을 집으려던 청년의 손이 주춤했다. 다시 꿀떡을 가리키며 우물거리듯 가격을 묻자 할머니는 똑같다고 대답했다. 망설이던 청년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저어, 이백 원이 모자라는데…요."
할머니는 대꾸 없이 개피떡을 봉지에 담았다. 떡을 받아든 청년은 재개발 현수막이 펄럭이는 허름한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청년은 무릎이 축 처진 낡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닳아빠진 슬리퍼에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떡거리는 소리가 났다. 거무스레하게 처진 눈가에 허기와 불안이 짙게 배인 표정 하며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지 싶었다.
기다리는 마을버스는 오지 않고, 내 시선은 도망치듯 사라진 청년의 뒷모습에 붙들려 있었다. 어둡고 눅눅한 표정에서 감지되었던 사연들이 마음 한구석을 못내 불편하게 했다. 모든 게 제 자신의 무능 탓일 수만은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꽃 필 시기에 시들어가는 푸른 나무를 보는 일은 안타까웠다. '목숨 걸고 우리 재산 사수하자.'는 현수막이 만국기처럼 펄럭이는 재개발 지역, 어느 샛방으로 숨어들었을 청년의 모습이 종일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것이다. 경주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말이다. 세상은 서열화되고 규격화되어 컨베이어 벨트처럼 돌아간다. 그에 맞춤한 인간이 된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론 컨베이어 벨트의 삶이 정답은 아니며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도 불안과 갈등 속에 전전긍긍 살아가기는 마찬가지다.
청년아, 내 힘으로 얻은 밥이 나를 키우는 것이다. 떨치고 일어나라. 불평등의 굴욕을 이긴 밥만이 진짜 건강한 자기 삶을 일으켜 세우는 법이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119 부를까요?"
내 말에 남자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간신히 손을 젓는 시늉을 했으나 무슨 뜻인지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남자는 길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입가엔 침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었다. 말은 어눌했고 손동작도 어줍었다. 얼핏 보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양새였다. 사람들은 무심하게 남자를 지나쳐 횡단보도를 건넜다. 처음에는 간질인가 싶었으나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뇌졸중인 것 같았다. 미적거릴 여유가 없었다. 길을 지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는 남자의 허락을 받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남자의 손은 이미 핸드폰 패턴조차 그리기 어려울 정도로 마비되어 있었다. 도움을 받아 간신히 암호를 푼 남자는 가족과 전화가 연결되자 짐승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가족들이 달려왔다. 장인이라는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고 제일 먼저 달려와 남자를 부축해 일으켰다. 장모는 서너 달 되어 보이는 아기를 업은 채 허둥거렸다. 부인인 듯한 여자는 젊은 남편을 끌어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발을 굴렀다. 여자는 황급히 남자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장모는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남자는 결혼 일 년차 새내기 신랑이었고 도서관에 공부하러 가던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취업 때문에 고심하더니 스트레스가 컸나 보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슴이 벌렁거렸다. 달포 전의 충격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동생은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술에 취한 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 황금 시간을 놓친 동생은 그대로 사망했다. 부검 결과 스트레스성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동안 과중한 업무 때문에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결국 밥벌이의 과로가 한 원인이 되어 쓰러진 것이었다. 동생은 그렇게 일찌감치 이승의 삶을 횡단해서 더 이상 밥벌이의 멍에를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가고 말았다. 실려 가는 남자를 보면서 동생이 혼자 겪었을 고통이 헤아려져 가슴 쓰라렸다.
일반천금一飯千金, 밥 한 끼에 천금으로 은혜를 갚는다는 고사성어다. 한 그릇 밥의 엄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어머니의 첫 안부도 늘 "밥 먹었냐?"였다. 당신에게는 밥이 보배고 목숨이었다. 남편도 그랬다.
밥과 자존심은 하나였다. 아무리 심하게 다투어도 정성스레 차려낸 밥상 앞에선 감정이 말랑해졌다. 밥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밥 한 그릇에 정도 나고 미움도 난다. 인간관계, 희로애락의 정수가 밥의 운용에 깃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밥그릇 싸움으로 치열하다. 오늘도 사상자는 생겨날 것이다. 보든 밥엔 피의 냄새가 배어 있다. 아들은 전방에서 치열하게 접전 중이고, 퇴역 노병인 남편도 여전히 변방에서 고전 중이다. 오늘도 나는 '밥모심'의 마음으로 상을 차린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부디 살아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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