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이 나이에서야 깨닫다니 / 곽흥렬

 

드디어 입춘이다. 얼마나 목을 늘여 가면서 기다리고 기다려 온 시절이던가. 입속에서 “입춘!” 하고 나직이 궁굴려 본다. 순간, 어느새 봄이 나비가 되어 입 안으로 날아드는 것 같다. 절후 상으로는 24절기 가운데 첫 번째인 이 날을 기점으로 새해가 열리면서 봄이 시작된다고 하니, 지나간 겨울 석 달 동안 잔뜩 움츠려 있었던 마음에 벌써 생기가 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춘 날 대문짝에다 ‘立春大吉 建陽多慶’이라는 글귀를 써 붙이는 것에 대하여 전혀 무신경했었다. 아니, 무신경을 넘어 "뭣 때문에 깔밋한 대문에다 무슨 부적처럼 저런 종이 쪽지를 발라 볼썽사납게 만드는 게지…"라며 마뜩잖게 여겼었다. 내일모레면 갑년을 맞는 이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춘첩자春帖子에 담긴 그 속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껏 왜 그리 계절의 흐름에 둔감했었고 세상일에 느즈막이 철이 나는지 적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중년 고개를 넘어서고부터, 해마다 시월로 접어들면서 우수수 지는 낙엽만 보아도 앞으로 겨울 석 달을 또 어떻게 날까 싶은 걱정에 잔뜩 긴장이 되었다. 어릴 적 별명이 빼빼장구였을 만큼 깡마른 몸에다 전형적인 소음 체질을 타고났다 보니 남들에 비해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까닭이다.​ 겨울만 되면 이 한 철을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 가서 보내고 올 수는 없으려나, 궁리를 해 보곤 한다. 누구는 눈 내리는 풍경에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나는 눈이 올까 봐 미리 겁부터 난다. 그만큼 겨울이 싫고, 그래서 이 삭막한 계절은 마음까지 잔뜩 움츠러들게 만든다.

오랜 옛적부터 입춘을 맞으면서 집집마다 춘첩자를 써 붙이는 풍습이 생겨난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도 봄을 간절히 기다려 왔음에 틀림이 없으려니 싶다. '입춘대길' 새봄을 맞이하여 큰 행운이 찾아오고, '건양다경' 따스한 기운이 감도니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그 글귀에다 담았으리라. 그런 선조들의 마음이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니 갈수록 봄이 좋아진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파릇파릇 새싹이 올라오고, 완전히 말라죽은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서 뾰족뾰족 움이 돋아나는 대자연의 조화造化가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사람의 일인들 무엇이 다르랴. 만물의 소생과 더불어 불끈불끈 기운이 솟고 삶에 의욕이 넘친다. 봄이 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나는 듯도 싶다.

사실 입춘이 되었다고 해서 정작 봄이 도래한 것은 아니다. 봄다운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으려면 아직도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어야만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저 남녘땅으로부터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하였다는 뉴스가 기어이 들려오고야 말 것이니, 길고 지루한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전해질 꽃소식에 어이 기분이 들뜨지 않으랴. 그 때를 기다리는 설렘이 있어 이 시절이 여간 기쁘지가 않다. 소생에의 환희를 가슴 벅차도록 외쳐 보고 싶어진다.

오늘 고대하고 고대하던 입춘을 맞으면서 내 마음의 대문에다 정성을 담아 춘첩자 한 장 써 붙인다. 봄이 저만치서 손짓을 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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