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에게

  헬레나

 

 여고 시절내가 가장 사랑한 과목은 국어였다영어와 불어도 좋아했지만무엇보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수필들을 좋아했다우리말이 어쩌면 그리도 수려하고 우아하며 다양할  있는지 새삼 경이로웠다

 

 한평생 그리워하던  아사코와의 인연을 아련하게 기억하며  써내려간  피천득의 ‘인연’, 대자연의 푸른  안을 거닐며,  무념무상의 경지로 고양되는 기쁨을 표현한 이양하의 ‘신록 예찬’,  “모든 것을 사리(捨離)하라그리고, 물러가 너 자신 가운데 침잠하라 현자의 조언이 담긴 ‘페이터의 산문’  – 이러한  글들의 여운은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다

 

 특히김태길의 수필, ‘글을 쓴다는 에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흐를 그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 -   구절을 오래 기억해 왔다

 

 수필이 다시 내게  것은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나이 오십을 넘긴 어느 우연히 동네 한국 월간지를 뒤적이다 '재미 수필가협회'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기사를 읽으며나는 전에 잃어버렸던 어떤 소중한 것을 되찾은 사람처럼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래이것이야,  내가 원하던 바로 수필을 쓰는 일이야!” 라고.  타국에서도 우리말로 수필을 쓰며 문학을 교류할  있는 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특하고 소중한지 모임을 창설한 초창기 회원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시쓰기 시작하였다유토피아와 같던 유년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을아들 둘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야 했던  할머니의 사무친 한을그리고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진 정겨웠던 사람들의 슬픈 사연들을

그러나,  무엇보다 '인생'을 알고 싶었다내가 누구이며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일단  문제부터 풀어야, 보다   의미 있고 심도 있는 글을   있을 것도 같았다

 

 성당에 다니며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의 사랑을 깨달은 아씨시의  프란시스코와, 아이처럼 단순하고 겸손한,  작은 사랑을 몸소 실행한 '리지유의 성녀' 소화 데레사,  그리고,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모든 것은  지나가는   지나가는 ”(중략), 이라며 묵상하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깊은 영성의 경지에 심취되기도 하였다.

 

 금강경반야심경화엄경 등과 같은  주옥같은 불교 경전도 접하며 우주의 섭리를 다각도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모든 것은 하나이며바로 여기가 정토이며세상은  있는 그대로 신성하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하지만오직 모를 뿐이다.  다만나를 보호해 주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을  감지하며,  그저 주어진 삶에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려 하고 있다

또한,  요가와 명상도 꾸준히 수련하여 영육의 건강을 함께 돌보기를 힘써왔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부업혹은 또 다른 취미 생활의 기회가 주어졌다.  일이 재미있기도 하고 부수입이 되기도 하여 지난 수년간그것에 너무 몰두하게 되었다그래서 아쉽게도 수필 쓰기가 뒷전이 되어버렸다  일을 마침내 그만둘  있었던 것은 코로나 사태 때문이었다

 

 부업을 그만두게 되니자유시간이   생겨나그간 미루고 있던 독서와인문학 공부도 나름대로 계속하며,  녹슬어 가던 지성과 감성을 다시 연마하고 정화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예전의,  땋은 갈래머리 문학소녀로 돌아온 나는요즘 다시 꿈을 찾은 듯하다앞으로 여력이 된다면 내가  수필을 모아,  화가인  딸에게 삽화와 표지를 그려달라고 부탁해,  예쁜 책을 내고 싶다.

 

 수필은 나의 눈을 맑게 해주고영혼을 살아나게 하고,  숨통을 열어주는,  청량한  줄기 바람 같은 것이다.  - 타국 만 리,  이렇게 미국까지 떠나와서도  모국어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도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