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난 탈출 / 이규석 

 

길을 나섰다. 어떤 이는 잘 꾸민 아름다움으로 또 어떤 이는 절제미 넘치는 단아함으로 함께 나섰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우리는 진한 감동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는지 모두가 출발에서부터 이미 순례자다웠다.

몇 해 전, 인도로 명상여행을 다녀왔다. 뭄바이에 있는 도비갓이라는 공동 빨래터에서는 사람들이 빨래를 도리깨질하듯 돌에다 메치고 있었다. 방법은 아닌 듯해도 세탁은 되고 있었고 맑은 물은 아니었지만 빨래는 하얘지고 있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서 문득 내가 세상을 세탁하겠다고 설쳐댄 꼴이 어른거렸다. 차라리 내가 빨래가 되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빨아도 희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삿날에도 회사 일에 파묻혀 이사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옛집으로 퇴근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민망해 할 줄 모르는 내게 아내는 일과 결혼하지 왜 자기와 결혼했느냐고 앙칼진 원망을 쏟아부었다. 오히려 난 그런 아내가 야속했다. 가족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한 것이 욕먹을 만큼 잘못된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일없이 빈둥거린 휴일엔 늘 짜증이 났으니 심한 일 중독자였던 게다. 난 바람이 없어도 펄럭이는 깃발이어야 했다.

건방지게도, 나는 최선으로 살아왔기에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이었다. 이번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산더미 같은 일을 남겨두고 열흘 넘게 자리를 비운다는 건 내게 일으킨 반란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가 자리를 비웠어도 연구소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 그동안 난 엄청스러운 착각 속에 살아온 것이었다. 아무리 부정을 해도 나르시시스트였음이 분명해졌다.

나를 해방시킨 건 뿌나에 있는 오쇼 라즈니쉬 명상센터였다. 다이내믹한 음악과 춤이 넘실거리는 곳, 넓디넓은 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곳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자주색 원피스처럼 생긴 헐렁한 마룬로브라는 옷을 입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다가 명상에 들도록 지도하고 있었다. 명상은 으레 정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웃으라기에 나도 웃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음악에 맞추어 웃다 보니 모두가 미친 사람 같았다. 웃음에는 유난히 인색했던 내가 어찌 흔쾌히 웃을 수 있으랴. 내 옆구리를 간질이며 웃고 바닥을 긁어가며 웃어 젖혔다. 나중에는 마주 보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쳐다보며 파안대소하는데 갑자기 음악이 끊어졌다. 정지동작 그대로 명상에 들자 신기하게도 기쁨이 샘물처럼 솟구쳐 올랐다.

다시 음악을 흘리다가 마음껏 울어보란다.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 울고, 넘치는 재주를 써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동생이 애석해 울었다. 그래도 눈물이 남아, 남을 의식해 척하면서 살아온 나 자신이 서글퍼 통곡했다. 마치 내가 죽은 것 같아 진짜 슬펐다.

이젠 화를 풀어보라고 했다. 쌓아놓은 울분을 단번에 날리려고 미워했던 사람들을 향해 마구 욕을 퍼부었다. ‘야 이 짐승 같은 놈들아, 먼저 인간이 되어라’ 악다구니를 쓰며 고래고래 고함도 질렀다. 카타르시스는 잠시, 그 아우성은 메아리가 되어 나를 향한 외침으로 되돌아왔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란다. 나뭇등걸처럼 둔탁한 몸을 장단에 맞춰 흔들었다. 어디서 솟은 신명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씬 젖었다. 혹, 내 속에 호시탐탐 일탈을 꿈꾸는 바람기라도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미친 듯이 흔들었더니 드디어 춤도 되었다. 희열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시원했다. 현식과 체면을 벗어버리고 있는 그대로, 느낌 그대로 살자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분출이 나를 해방시켰나? 인도는 나에게 신명난 탈출구가 되었다. 이젠 나를 찾아 떠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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