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 날다/ 박 유니스
그날, 오후가 내려앉던 풀숲에 눈길을 끄는 움직임이 있었다.
처음엔 누군가 색종이를 오려서 숲으로 날려 보냈나 했다. 오후의 아지랑이가 여러 가닥으로 옅어지자,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온몸을 노랑과 검은색으로 휘감은 호랑나비 두 마리였다. 화사한 의상으로 단장한 그들 한 쌍의 호랑나비는 그러나 차림에 어울리지 않게 몸놀림은 수줍었다. 날개를 조금씩 털며 작은 나뭇가지에 나붓이 앉아 있었다. 현란한 색의 의상을 휘날리며 하늘하늘 비상을 계속해야 십상인데 의외였다.
그들은 몇 시간 전에 부화해서 허물을 벗고 막 그물망을 벗어난 어린 호랑나비들이었다. 아직 몸이 덜 말라서 날아오를 기력이 부족하다. 날개에 힘을 모아 창공 높이 떠돌 꿈을 꾸며 햇볕에 몸을 말리는 중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날개를 움직여 삽시간에 건너편 숲으로 사라졌다.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후배 P의 집 뒤뜰에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그건 태평양과 대서양의 거리만큼 아득한 느낌의 허탈함이었다.
후배 P의 집을 방문했던 그날, 그녀는 우리를 뒤뜰로 안내해서 천으로 덮어 놓은 그물망을 보여줬다. 거기엔 어른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초록색 나무 막대 같은 생물이 여럿 있었다. 호랑나비 애벌레라는데 곧 탈피해서 날아오를 날이 머지않았으니 그 장관을 보여주겠노라 했다.
코로나 델마에 있는 로저스 가든에서 Milk Weed 화분 두 개를 샀다. 하루 정도 베란다에 화분을 놓아두었다. 이틀 후에 보니 깨알 같은 흰점이 화분마다 두어 개씩 흙 위에 돋아나 있었다. 어느 틈에 호랑나비가 찾아와 성은을 내려준 것이다. 미리 짜둔 넓은 그물망 안에 화분째 넣어 주었다. 한 주일가량 지난 후에 그 알들은 가느스름한 까만 점으로 변했다. 알들이 제대로 자라고 있었다. 두 주일 후부터 알들이 고물고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밀크위드 여기저기에 구멍이 났다. 알들이 잎사귀를 파먹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쪽은 머리로, 다른 쪽은 꼬리로 짐작되었고 몸통에는 가느다랗게 노랑 줄과 검정 줄이 세로로 희미하게 그어져 있었다.
2주가 지나 3주에 접어들자 왕성한 식욕이 없어지고 하루 종일 기어다니기만 했다. 고치가 되려고 먹이는 안 먹고 헤매던 그들은 어느 순간 천정을 찾아 올라갔다. 몸에서 끈적끈적한 하얀 액체를 분비해서 거기에 몸통을 걸고 매달렸다. 그때까지도 노랑과 검정 몸통이던 그들은 하루 정도 지나자, 몸을 비틀어 허물을 털어내고 어른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쭉한 초록색 물체로 변했다. 그렇게 열흘 내지 2주 정도 매달려 있다가 그들은 차례대로 몸을 비틀어 허물을 벗어 던졌다. 초록색이 거무스름하게 변하며 몸이 갈라지다가 어느 순간 호랑나비의 형체를 갖췄다.
날개에 물기가 남아 펴지지 않아서 아직 날 수 없는 그들은 조용히 그물망 안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게 될 때를 기다린다. 보통 서너 시간 후면 날개를 대충 말리고 성급한 순서대로 한 마리씩 그물망에서 탈출한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면 그새 날개 근육이 퇴화해서 날지 못할 수도 있다. 망을 활짝 열고 가느다란 젓가락을 몸에 갖다 대어주면 기꺼이 그것을 의지해서 날아간다. 그들이 그물망을 빠져나가는 최적의 시간은 오전 열한 시에서 오후 세 시 사이다. 새벽에 모이를 충분히 먹은 새들의 움직임이 뜸한 시간이다. 어릿어릿한 나비들이 노련한 새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새들의 먹이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는 오후 4시 이후의 시간도 피해야 한다.
그물망을 빠져나오면 몸을 충분히 말리기 위해 그들은 멀리 가지 않고 가까운 나뭇가지를 찾아가 앉는다. 마치 마지막으로 나를 즐기세요! 하는 듯한 몸짓이다. 두엇쯤 모여서 날개가 다 마르면 그들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둘이서 ‘파 드 두(pas de deux 둘이서 추는 춤)’를 추면 머지 않아 뒤늦게 부화한 새내기들이 선임들과 합류해서 함께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군무)’를 펼친다. 인근 숲이 나비들의 춤사위로 노랑과 검정의 축제로 무르익는다. 지난 두 달여간의 노고와 기다림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다음다음 해에 아들과 딸은 각기 가정을 이루고 곧 아이들이 태어났다. 첫 손자가 태어나고 보름 후에 외손자가 태어났다. 키도 체중도 늘 고만고만하게 자랐지만 성격은 판이했다. 친손자는 음표로 표현하면 스타카토로 통통 튀는 매력이 있고 외손자는 신중하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자신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녀석이다. 할아버지의 품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관심과 사랑을 배나 더 주려고 노력했고 그만큼 그들의 일상은 때론 벅차기도 했다.
두 아이의 각급 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날은 자주 겹쳤다. 학교에서 상을 받거나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날 등은 물론이고 콩쿠르에서 기대했던 순위에 들지 못한 날, 학우들과의 관계에서 적잖은 상처를 받은 날 등, 열여덟 해에 걸친 그들 성장의 고비마다, 성공과 좌절의 순간마다 내게 부딪히는 임팩트는 늘 두 배였다. 할머니는 동시에 기쁨과 근심을 표현하고 금일봉을 두 개 준비하고 두 곳의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친구 문제로 의논해 올 때 피드백을 주고 공감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두 아이의 친구들 이름과 그 부모들 원래의 고국도 기억하고 있어야 했다. 토트넘 손흥민 선수 동료들의 등번호와 출신 국가명을 숙지할 때처럼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따로 수첩에 적어서 들고 다녔다.
두 아이가 올해 나란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저녁마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여러 대학 이름과 순위, 그리고 입학허가서를 제출하는 때와 에세이를 작성하는 방법 등, 여러 얘기들이 화두에 오른다. 저들의 부모가 대학에 진학하던 당시에도 그 과정을 거쳤고 내가 유학 올 때도 밟은 수순이지만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녀석의 진학 드라마는 다채롭다. 대학마다 다른 입학 사정 과정과 그 디테일, 또 지원자들에게 합격과 불합격을 통보하는 방법과 시점 등을 매일매일 거의 시간 단위로 듣고 있다. 하입슴(HYPSM)이 어느 대학교의 머리글자들인지도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 후면 그들은 푸른 하늘에 덜 여문 깃털을 팔랑거리며 날아오를 것이다. 꽃은 피어 있지만 위험한 새들은 없는 길이었으면 한다. 아늑한 그물망을 벗어나 낯선 도시의 상아탑에서 그들의 날개는 단단해지고 지식과 지혜가 쌓이리라.
여기 태평양 가에서 먼바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지식과 지혜의 만선(滿船)을 타고 오는 나비들을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어린 나비들이 있어 나는 행복한 호랑나비다.
와, 호랑나비로 변신하는 과정이 신비롭네요. 그들이 날개를 말리는 소중한 모습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손자분이 호랑나비처럼 신비롭게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사랑을 나눠주신 선생님께 한없는 축하를 보내드립니다!
멀리서나마 그들의 날개짓에 찬사를 박수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