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 문성록
이건 버려진 문짝이네
질퍽질퍽한 공터에 누워있는 낡은 문이네
언제나 한 발짝 비켜서서
문지방 닳도록 누군가 드나들게 했던 문이네
군데군데 칠 벗겨지고 풍(風)맞은 사내처럼 사지 뒤틀렸지만
누워서도 누군가 밟고 지나게 하는 중이라네 살신성인이네
떨어져 나간 손잡이 구멍에 풀 두어 포기 세를 들였네 천성인 셈이네
화목했거나 불행했거나
묵묵히 서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견뎌온 시간이었네
평생을 그렇게 섰다가 버려진 문이네
돌쩌귀 밑 쇳가루 소복이 쌓이는 동안
한 번도 제 속은 열고 들어가 보지 못한 문이네
하지만 식구들 잘 다녀오라고
세상으로 길 내어준 문이네
사람의 일도 사랑의 일도 문 하나 사이의 일이라네
세상만사 문 밖의 일과 문 안의 일이 있을 뿐이라네
여기 문짝 하나 누워있네
길은 여기서부터
또 이어질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