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너무 좋다.
멋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족들이 하는 말이다-
내 가슴에도 작은 흥분이 일렁거릴 정도로
화창한 날씨다.
갑자기 아내가 나들이 가잔다.
마땅히 할 일도 없으면서,
가게는 어떡하고....
망설이는 나를 억지로 끌고간다.
바람이 있는 곳이면
아무 곳에나 데려다 달란다.
첫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나를 만나서
40여일만에 결혼을 결정한 아내다.
그리고는 멋 -아내말로는 무드- 없이 30여년을
살아온 아내다.
여러나라의 정원을 꽃과 함께 꾸며논
근처의 보태닉 가든이라는 곳에 갔다.
늦게 찾아든 봄이기에
아직 황량한 분위기인데도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쑥스러워 두리번거리는 나의 손을 잡고,
10년도 훨씬 넘게 살면서 이렇게 좋은 곳을
한번도 데리고 오지 않은 나를
원망스럽게 흘기면서도
행복해 보인다.
문득
가슴이 아려온다.
40년 가까이
나는 무엇으로 살았을까...
책임감으로?
아이들 때문에?
늘 아내가 묻는 것처럼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은 있었을까...
아무 생각없이 걸치고 나온
조끼사이로 땀이 흐른다.
아내를 흥분시킨 바람이
가슴속으로 차갑게 파고든다.
이제는 우리도
자주 이런 시간을 갖자고
응석부리는 아내의 다그침에
속으로 ‘그러마’ 하고 대답한다.
낯설지만 이까짓 조그만 배려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딸아이에게서 전화 문자가 왔다.
‘아빠 오늘 데이트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