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빈티지 / 문경희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긴, 살아오는 내내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래 봐야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는 빤한 확률인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 세상의 끝에 선 듯 갈팡질팡하고 했다.
중차대하거나, 쓰잘머리 없거나, 나를 흔들리게 만드는 것들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서성거린 시간에 비해 결단은 가능한 귀차니즘에 손상을 입지 않는 정도에서 싱겁게 내려지곤 했다. 탕, 탕, 탕. 판사 봉을 내리치듯 마음을 굳히기까지 고심으로 보낸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 비생산적인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삼십 대의 중턱을 넘은 무렵, 한두 오라기씩 반갑잖은 손님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민망했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그것을 두고, 다행히 사람들은 새치라 불러주었다. 여전히 꽃이라 해도 좋은 시절, 방정맞게 고개를 내미는 처사는 괘씸했지만, 새치라는 너그러운 한마디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의 보법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속도전이라도 치르듯 가속에 가속을 붙여 나를 해작질했다. 그들에게 태클을 걸 만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언제부턴 가는 새치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연민이 읽어졌다. 마치 간 자처럼 처처로 숨어든 하얀 터럭들이 나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버릇없이 흰머리 차림이냐고, 술자리에서나마 반 농담으로 꾸짖어 주는 어르신들이 차라리 감사했다.
‘친정어머니도 머리가 일찍 셌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중언부언하며, 그들을 변명하는 내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흰머리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덕분에 나는 거울을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집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공중화장실에서도 습관처럼 머릿밑을 들추곤 했다. ‘뭐, 어때.’ 하다가도 ‘좀 심한가.’ 싶으면 괜스레 의기소침해졌다. 영 내키지 않는 날이면 모자(帽子)라는 꼼수를 동원하기도 했다. 화장품 코너에서 염색약을 처음으로 구입한 것이 그 무렵이었지 싶다.
동화 속 빨간 머리 앤이 되었다가. 서구 여인의 금발이 되었다가, 잘랐다가 길렀다가, 머리카락으로 오만 요사를 부렸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니 두피를 뚫고 올라오는 하얀 기척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발본색원의 의지로 염색에 매달렸다. 컬러플한 머리는 잔설처럼 허옇게 바랜 머리만큼이나 눈길을 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남의 눈 따위는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내 머리를 내 돈 들여 내가 원하는 색으로 칠하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며 빳빳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염색을 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졌고 그럴수록 머릿결은 푸석해졌다. 그것보다 귀찮아서라도 더는 못 할 짓이었다. 언제까지 돈과 시간과 노역을 들여가며 그들과 대거리를 해야 하는지를 두고 다시 고민에 빠져야 했다. 결국, 그들의 세가 이미 마지노선을 넘어버렸으며, 숨긴다고 영영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양심상 새치라는 말을 기대할 수 없는 지경이었기도 했고.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고 했던가. 적이었던 흰색과 아군의 협정을 맺은 채 나를 물 들이고 있던 붉은 색을 적으로 돌려세웠다. 기르고 잘라내기를 반복하며 완전히 붉은 기를 몰아내는데 일 년 이상이 걸렸을 게다. 그로부터 머리에 관한 한은 자유였다.
허연 머리를 이고 세상을 활보했다. 친구들의 의아한 표정에는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더러 어르신이 많은 자리에 참석할 때면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자주 그런 모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러저러 입방아도 참을 만했다. 생뚱맞기는 하지만 흰머리가 외려 멋있다는 친정어머니의 응원도 일조를 했을 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직은 젊다는 자신감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막연하게 나이 든다는 편안함을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들어 유독 흰머리가 거슬린다.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 되뇌이면서도 나를 의식하는 일이 잦아진다. 물 좋은 클럽은 문전에서 퇴짜를 맞는 나이, 잉태와 출산이라는 은혜로운 작업에도 금기의 선이 그어진 나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 줄까 봐 겁이 나는 나이, 세상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둘 늘어난다는 불편한 진실을 곳곳에서 목도하면서 시작된 갈등인지도 모른다. 흰머리가 비로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건만 흰색이 더없이 추레해 보이기 시작하다니. 그것은 그만큼 젊음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분명,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는 적을 터. 내일이라는 시간이 재산이라면 나는 오래전 그때보다 훨씬 빈한해졌을 것이다. 슬프게도 이제는 붉고 노란 색으로 나를 치장할 뚝심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 황망한 선택의 기로에서 내게 남은 카드는, 내키든, 내키지 아니하든 ‘지금처럼’을 밀고 나가는 것밖에 없을 성싶다.
낡고 닳은 구닥다리여도 괜찮은, 오늘의 콘셉트도 여전히 빈티지다. 자루 같은 원피스에 대충 몸을 구겨 넣으면 반백이 넘은 머리색과 제법 궁합이 맞는다. 나름 빈티지라 서양식의 그럴싸한 유행어를 갖다 붙이지만 빈貧티지라 한들 대수랴. 가진 것만큼 솔직담백하게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쓸데없는 근심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리니. 더러는 송곳처럼 날을 세우고 더러는 세상 너그러움 품을 키우며, 옷과 내가 만들어내는 여백 속에 내 이름표 생의 무늬를 완성하는 일만 남았으리니.
원래 빈티지라는 단어는 포도주에서 나왔단다. 포도가 풍작인 해에 정평이 있는 양조원에서 만든 가장 좋은 와인으로, 생산 연도를 라벨에 명시한 포도주를 빈티지 와인이라 한단다. 그렇다 한다면 내 머리카락의 변색이야말로 나의 묵은 세월을 증명하는 라벨쯤이라 자위를 해도 좋을까. 제대로 된 명품으로 숙성되고 있는지 의문이기는 하지만, 명품이 아닌들 어떠랴.
빈티지vintage든, 빈貧티지든, 원색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오늘도 어제처럼 보무당당 흰색을 이고 나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