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플랫폼 / 황옥화
어제는 친정아버지 제사였다. 절을 올리는 일조차 쉽지 않은 나이가 되어, 부모님이 떠나시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건너온 지금, 그분들을 기리는 자리가 새삼 깊게 다가온다. 제사상 앞에 앉아 향을 피우고 절을 드리며 부모님을 부르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오래전의 장면들이 되살아났다. 문간에 서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먼발치에서 내게 손을 흔들던 아버지의 웃음이 바람결처럼 다가왔다.
어머니는 봄에, 아버지는 가을에 떠나셨다. 피어남과 스러짐의 사이에서, 두 분 모두 각자의 계절을 남기고 저편으로 가셨다. 꽃이 피고 지듯, 그렇게 두 분은 서로 다른 계절의 문턱에서 나란히 멀어지셨다.
제사를 올리는 동안은 마치 두 분과 다시 만나는 듯했다. 향이 피어오르는 시간, 공기 속에는 오래된 목소리와 냄새가 함께 섞여 있었다. 동기간이 한자리에 모여 절을 드리고, 조심스레 음식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부모님의 흔적을 발견하곤 했다. 세월이 깊게 새겨진 주름 속에서도 그분들이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렇게 모여 있는 일만으로도 묘한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문득 스치는 불안도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자리가 허락될까, 그 물음이 향냄새 속에서 은근히 퍼져 나갔다.
언니는 지방 소도시에 살아 제삿날이면 기차를 타고 온다. 제사가 끝나면 늦은 밤, 나는 언제나 언니를 역까지 배웅한다. 집이 기차역 가까이에 있어 그 일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되었다. 차로 역에 도착하면 남편은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그때부터는 오직 언니와 나, 둘만이 남는다. 플랫폼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은 고요하면서도 따뜻하다. 하루의 긴장이 모두 풀리고, 말은 많지 않아도 마음은 서로에게 닿아 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언니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여전히 ‘동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낀다.
플랫폼은 늘 적막하다. 전광판의 붉은 불빛이 깜박이고, 몇 안 되는 승객들이 간간이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바람은 차갑고, 역의 공기는 희미하게 철 내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 적막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위안이 된다. 언니는 짧게 말을 건넨다. "우리 이제 건강만 생각하자" 그래야 또 보지. 그 한마디에 긴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래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 서로의 노쇠함을 감지하는 마음이 그 말속에 깃들어 있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순간순간이 이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서 쇳소리가 울리며 기차가 다가온다. 어둠을 헤치고 들어오는 불빛이 번쩍일 때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기차가 멈춰 서고, 언니는 천천히 올라 몇 안 되는 승객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다. 창가에 앉은 언니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그 순간을 오래도록 눈에 담으려 애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문이 닫히고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손끝이 아플 정도로, 마음이 저릴 정도로 흔든다. 기차가 멀어져 가는 동안에도 나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그 순간이 우리 사이의 마지막이 될까 두려운 까닭이다.
언니가 떠난 자리에는 바람만 남아 불고, 벤치 위에는 우리가 함께 앉아 있던 온기만 희미하게 남는다. 홀로 역을 빠져나오는 길은 언제나 공허하다. 그러나 그 공허 속에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또 이런 날이 오겠지, 이것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나를 붙든다. 기다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따뜻한 품보다는 매서운 눈빛이 더 익숙했다. 그 눈빛이 두려웠지만, 이제야 안다. 자식이 어디서든 기죽지 않기를 바랐던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그와 반대로 따뜻하고 다정했다. 유난히 나와 언니를 챙겨주셨고, 그 곁에 있으면 세상이 부드럽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내 곁을 지켜준 건 언제나 언니였다. 나를 데리고 다니며 챙겨주던 그 순간들이, 가난했던 시절 내 마음을 지켜낸 등불이었다.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더 외롭고 흔들리며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언니는 이제 팔순을 바라본다. 걸음은 느려졌지만, 여전히 내겐 의지할 수 있는 어깨다. 제사라는 자리를 빌려 이렇게라도 만나고, 또 기차역에서 단둘이 마주 앉아 기다리는 시간은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다. 다시 올 제사, 다시 올 만남을 기약하며 우리는 또 살아간다. 언니와 나 사이의 시간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 믿는다. 그 믿음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따뜻하다.
그 길 위에서 문득 고은 시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만남은 이별을 안고, 이별은 만남을 안고" 삶이란 끝없는 환승이다. 기차가 도착하고 떠나듯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기다려 주는 마음 하나가 우리를 지탱한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기억이 그러했고, 언니와 함께한 시간이 그러했다.
밤의 플랫폼은 이별의 자리가 아니다. 다시 만날 희망을 약속하는 자리다. 기차가 떠나고 사람은 남는다. 그러나 공허만 남는 것은 아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언니와 함께 앉았던 온기가 스며 있다. 그 온기는 다음 만남으로 이끈다. 기다림은 삶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숨결이다. 인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환승이고, 사랑은 그 기다림을 견뎌내는 힘이다.
그래서 알겠다. 떠남이 아픈 것은 끝이어서가 아니라. 떠난 뒤에도 깊이 남아 있는 사랑이 그 순간을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기차가 멀어져 가도 그 빛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밤의 플랫폼에 남은 온기처럼, 그 사랑은 다음 만남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별은 그래서 끝이 아니라, 조용히 이어지는 길의 한 부분일 뿐이다.
